남원 승련사-비구니스님들의 수행도량

남원 승련사-비구니스님들의 수행도량

2010년 08월 09일 by jeungam

    남원 승련사-비구니스님들의 수행도량 목차

남원 승련사-비구니스님들의 수행도량

춘향의 고장 남원시내에서 차로 30분정도 장수방향으로 달리면 왼쪽으로 작은 승련사 표지판이 보인다. 좁은 오르막길을 따라 700m 정도 올라가면 돌축대위로 만행산자락에 자리하고 백두대간과 마주한 승련사를 만날 수 있다. 승련사를 오르는 길에는 스님들이 심어놓은 각종 농작물과 연꽃을 바라보며 오르는것도 색다른 맛을 전해준다.

남원 승련사

승련사는 전북 남원시 산동면 식련리 221번지 선학원 소속의 사찰로 현재는 비구니스님들의 기초선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승련사가 위치한 만행산은 불자(佛子)가 열심히 수행하고 남을 위하여 선행을 하는 이타적인 보살행(菩薩行)을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 마을 이름인 식련리는 마을 사람들이 승련사에서 연꽃을 가져다가 심었다고 해서 식련리라 부른다고 한다.

승련사 장독대

승련사의 창건연대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목은집』 ‘승련사기’에는 승련사의 중창과 관련된 이야기가 수록되어있다. 목은집에 따르면, 승련사의 옛 이름은 금강사로 고려시대 송광사 16국사인 홍혜국사와 졸암선사가 주석했는데, 졸암선사가 ‘36년간의 중창불사’를 마치고 금강사를 승련사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또한 ‘승련사기’는 “당시(고려시대)에 불전, 승무, 선당, 선실, 객실, 곳간, 공양간 등 칸수를 계산하면 모두 1백 11칸이나 되었고, 무량수불을 조성해 스님들의 정진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도량”이라고 전하고 있다.

승련사는 많은 수행승들이 수도하면서 불법에 용맹정진하고 있는 사찰이다. 승련사는 걸출한 여러 스님들과 인연이 닿아 있다. 이곳에 주석하였던 졸암선사, 각운선사를 비롯하여, 태고 보우선사, 환암 혼수선사, 홍혜국사 등이 그들이다. 승련사 역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채 조선조에 이르러 폐사했다. 그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인 1799년(정조 23년) 편찬된 『범우고』에만 “승련사가 폐사됐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다.



승련사 대웅전

지금의 승련사는 현 주지인 경훤 스님이 1986년 논으로 되어 있는 부지 2천여 평을 매입, 대웅전, 대중처소, 선방 등 주요 전각을 지어 사격을 이룬 것으로, 현재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부처님 후불탱화는 영상회상도이며 닫집은 용을 새긴 보궁형으로, 그 장엄함이 뛰어나다. 이밖에도 산중탱화가 모셔져 있고, 좌우(左右)측 벽면에는 각종 벽화가 그려져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이 앉은 대웅전 외견(外見)의 장엄함이 그대로 대웅전 안으로 옮겨진 셈이다.

이러한 유명한 승려들의 이름을 뛰어넘고자 그곳에는 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밤낮도, 침식도 잊은채로 진리를 찾아 공부하고 있다. 절을 찾아가 구불구불 한참을 가는 길에서는 사색에 잠겨 산보하는 여러 스님들 곁을 스쳐 지나갈 수 있었다. 그들 모두는 맑은 얼굴에 깊은 눈을 지니고 있었다.

용상방

승련사는 비구니스님들의 선방답게 매우 고요한 사찰이다. 이것은 공부하고 있는 많은 비구니 스님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누구나 소리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산새도 지저귀는 소리를 낮추고 사찰에 사는 강아지도 큰소리를 내지 않으며, 다만 소리 내지 않는 이름모를 꽃들만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다투며 열심히 피었다 지었다 할 뿐이다. 따라서 승련사를 찾아 가더라도 스님들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승련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독특한 유물이 남아 있다. 이것은 승련사 오른편에 앉아 있는 바위에 새겨진 ‘금강삼매 수행도’이다. 이 수행도는 강원도 오대산 적멸보궁과 경북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의 바위에 새겨져 있는 수행도와 일치한다.

스님에 따르면 전통사찰로 지정될 당시 문화재 전문가들이 “금강삼매 수행도는 여느 절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수행도로서, 특히 승련사 금강삼매 수행도에는 ‘옴마니반매홈’이라는 진언이 새겨져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며 “이는 승련사에 깃든 수행 풍토가 더욱 깊고 넓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