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암스님 회고록 '그대, 보지 못했는가'

서암스님 회고록 '그대, 보지 못했는가'

2013년 05월 04일 by jeungam

    서암스님 회고록 '그대, 보지 못했는가' 목차

서암스님 회곡록 그대보지 못했는가서암 스님 구술/이청 엮음/정토출판 펴냄/1만6천원

“내 마음 밖에 죽고 사는 문 따로 있지 않아”

<그대, 보지 못했는가>

 

 

열반 10주기 맞은 서암 스님 회고록

평소 일상생활 속의 선 강조해

 

“여보게, 어떤 한 사람이 논두렁 밑에 조용히 앉아서 그 마음을 스스로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바로 중이요, 그곳이 바로 절이지, 그리고 그것이 불교라네.”

 

젊은 시절, 불교계의 현실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법륜 스님은 1980년대 미국 LA의 작은 사찰에서 노스님 한 분을 만난다. 법륜 스님은 노스님의 이야기에 불교 운동이라는 이름에 매몰돼 있던 자신의 삶을 각성하고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이 노스님이 바로 제 8대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서암 스님이다.

 

전 조계종 종정, 한국 최고의 수도선원인 봉암사 조실 등 서암에 대해서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지만 그의 삶을 표현할 수 있는 한마디는 ‘자유와 원칙’이다. 일본 유학시절 중증 폐결핵 진단을 받고 귀국한 서암 스님은 처음 출가한 문경 김용사서 용맹정진 했다. 그러던중 스님은 ‘생명, 그것은 곧 마음이니, 내 마음 밖에 죽고 사는 문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의 육신을 보며 깨닫는다. 이후 스님께서는 평생 하나의 원칙을 지니고 살아갔다.

 

그 것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하더라도 불법에 맞게 수행하는 자세로 하면 산속에서 정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며, 산속에 앉아 홀로 정진하더라도 뭇 중생의 고통을 잊지 않으면 자비 실천에서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으로 세상과 종단 그리고 여러 불자들이 원한다면 어떤 일이라도 사심 없이 직무를 수행했다. 그러다가 주어진 직무를 제대로 해나갈 환경이 못될 때는 아무 미련도 없이 그 ‘자리’를 내던지고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왔다. 해방 후 경북 종무원장 시절부터 조계종 총무원장, 원로회의 의장, 종정에 이르기까지 스님은 이 원칙에 벗어나지 않게 직책을 맡고 또 미련 없이 내려놓고 사문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불교의 근본원칙 하나를 갖고 스님은 문중, 역할, 종단에 구속되지 않은 자유인 그 자체로 평생을 살다가셨다.

 

생활 선(禪), 내 마음을 찾는 법

평생 선 수행을 바탕으로 법문하고 공부한 스님은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쉬운 ‘생활선의 법문’ 으로 알려져 있다. 선에 있어서도 생활 속 실천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선이란 것은 어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손 움직이고 발 움직이고 울고 웃고 이웃 간에 대화하는 그 속에서 24시간 내 모습을 온전히 찾아가는 것, 그것이 생활선”이라는 것이 스님의 가르침이었다.

 

우리는 바쁜 일상을 살아간다. 항상 바쁘게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정작 현재의 나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본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불교는 마음의 정체를 밝히며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자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 알려준다. 그리고 그 자기 마음자리를 깨닫는 방법을 선(禪)이라고 했다. 그래서 출가승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선이다. 그리고 선은 불교 전매특허가 아니라고 말한다. 혼돈과 고통으로 얼룩진 정신세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자기 본래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참선이고 생활선이다.

 

종단분규, 종정 탈퇴와 탈종 그 오해와 진실

서암 스님은 해방이후 왜색화된 한국불교를 정화한다는 목적으로 불러들였던 폭력이 오늘날까지 불교 발전을 저해하는 근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비록 대의와 명분은 옳았어도 그 방식이 문제라면 불교적 입장에서는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꼭 물리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단식이든 집회든 다중의 힘을 과시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폭력이며 폭력적인 해결법은 세속의 방식이고 불교적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이 스님의 뜻이었다.

 

1994년 종단개혁 당시, 대중의 힘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것을 부정하고 막으려 했다. 대중들은 내편·네편으로 나눠 대중의 힘을 모으는 과정에서 ‘서암 스님은 우리 편이 아니다’는 오해와 더불어 ‘개혁의 대상’으로 몰아갔다. 비불교적인 방법에 대해 불교적인 원칙을 제시하며 서암 스님은 종정을 사퇴하고 종단밖으로 나갔다.

 

일련의 이런 상황에 대해서 잘못 평가되고 왜곡되는 부분에 있어서 서암 큰스님 열반 10주기를 맞는 지금, 서암 스님의 종정사퇴와 탈종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수행자로써 최대의 명예로움으로 다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 노장,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갔다 해라

열반에 들기 전 시봉하던 제자들이 스님께 한 말씀 해주시기를 간곡히 청하자 스님께서 한마디 했다.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게송도 아니고 법문도 아닌, 평범하기 그지없는 말. 그러나 부처님을 비롯하여 이 세상의 불교 전체를 아우르고 질타한, 가장 불교적인 한마디였다.

 

무언가 드높고 복잡 미묘한 경지를 이르면 가치롭게 여기는 풍토에서 스님의 담백한 한 말씀은 이런 세태를 꼬집어주는 것만 같다. 서암 큰스님 열반 10주기를 맞아 큰스님의 수행과 깨달음을 담은 회고록을 출간하는 이유는 삶이 풍요로워지면서도 정신적으로 행복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청량수와 같은 시원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검소한 삶과 깨달음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현대불교신문 김주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