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정 진제 법원 대종사 임진년 하안거 해제 법어

Posted by 정암
2012.09.01 04:19 불교자료실/법어

조계종 종정 진제 법원 대종사

운문(雲門)의 항상철가(恒常鐵枷)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法遠

〔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

古鏡本無塵〈고경본무진〉이나

唯人造點琢〈유인조점탁〉이로다.

옛 거울에는 본래 티끌이 없음이나

다만 사람들이 더럽히고 닦고 함을 지음이로다.

인인개개(人人箇箇)가 가지고 있는 옛 거울에는 일점(一點)의 진애(塵埃)도 없음이나, 어리석은 사람들이 공연히 더럽히고 닦기를 그칠 날이 없음이로다.

만약 사람이 있어서 이 뜻을 바로 알 것 같으면, 참구(參究)하는 일을 다 해 마쳐서 억만 년이 다하도록 편안한 진리의 낙(樂)을 누리게 되리라.

부처님의 최고의 진리의 법문을 듣고 참선수행(參禪修行)을 하는 것은, 인인개개가 지니고 있는 이 옛 거울을 바로 보기 위함이로다.

어느덧 여름 석 달 안거를 마치는 해제일이로다. 석 달 동안 각자 간절한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기를 한결같이 하였는지 반성해 보아야 함이로다. 대도의 진리를 깨닫고자 수행하는 이가 해제가 무섭게 바랑을 지고 동분서주하며 허송세월만 해서는 대도(大道)를 이루기가 도저히 불가능함이니, 화두를 타파하여 선지식께 인가받는 그 날이 해제라 다짐하고 바위처럼 흔들림 없이 정진에 정진을 더해야 함이로다.

이 공부는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의심으로써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기를 흐르는 물과 같이 끊어짐이 없도록 씨름해야 함이로다. 그렇게 일념(一念)이 되도록 노력하다 보면, 문득 참의심이 돈발하여 보는 것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며칠이고 몇 달이고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면 불조(佛祖)의 백천 공안(百千公案)을 한 꼬챙이에 꿰어버리게 됨이니, 그러면 누가 어떤 물음을 던지더라도 석화전광으로 척척 바른 답을 내 놓으리라. 그러면 제불제조(諸佛諸祖)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살림살이를 수용하게 됨이요, 산승이 이 주장자를 전하여 80대 법손(法孫)으로 봉(封)하리니, 모든 참구하는 이들은 결제 해제에 일체 관여하지 말고 오로지 화두일념에 혼신의 정력을 다 쏟을지어다.

석일(昔日)에 운문(雲門) 스님이 젊은 시절에 부처님의 심오한 진리의 법을 깨닫고자 발심출가(發心出家)하여 오로지 참선수행에만 몰두하였습니다.

당시 목주(睦州) 선사의 명성이 자자하였는데, 발심공부인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친견하여 점검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목주 선사는 조그마한 단칸 토굴을 지어 외인(外人)이 전혀 들여다 볼 수 없게끔 한 길이 넘게 담장을 빙 둘러쌓고, 한쪽에 사립문만 하나 내어놓고 지내셨습니다. 그러다가 누구든지 친견하러 와서 사립문을 똑똑 두드리면 문을 반쯤 열고 나와 한 손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의 멱살을 잡고는,

“이르고 일러라!” 하셨습니다.

만약 방문객이 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면, 선사께서는 육척장신(六尺長身)의 그 큰 체구로, 잡았던 멱살을 그대로 밀쳐버리는데, 제아무리 장사라도 여지없이 저 밖으로 나동그라지고 말았으니, 제대로 친견한 이가 없었습니다.

운문 스님이 목주 선사의 법(法)이 장하다는 소문을 듣고서, ‘내가 그 선사님을 친견하여 탁마(琢磨)받아 기어코 부처님의 심오한 진리의 법을 깨치리라.’ 생각하고 목주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토굴 앞에 이르러 사립문을 똑똑 두드리자, 목주 선사께서 문을 반쯤 열고 나오시더니 대뜸 멱살을 잡고는,

“이르고 일러라!” 하셨습니다.

운문 스님이 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자, 목주 선사께서는 잡았던 멱살을 확 밀쳐버렸습니다. 엉겁결에 답도 못하고 저만치 나뒹구니 목주 선사께서는 여지없이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셨습니다.

도(道)를 깨쳤다면, ‘이르고 일러라!’ 할 때 답이 척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이는 무엇을 일러야 하는지 깜깜해서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법입니다.

운문 스님이 목주 선사를 친견하려고 몇 번을 찾아갔지만, 이르라는 데 답을 못 하고 계속 쫓겨날 뿐, 도무지 안에 들어가서 진법문(眞法門)을 들을 기회가 생기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이번에는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목주 도인 토굴 안에 들어가고야 말리라.’ 하는 분심(憤心)이 일어, 다시 목주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사립문을 두드리니, 목주 선사께서 나오셔서 또 멱살을 잡으시고는,

“이르고 일러라!”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한 마디 척 해버리면 목주 선사께서도 문을 활짝 열고 흔연히 맞아들일 것인데, 운문 스님은 이번에도 또 우물쭈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어떻게 해서든지 토굴 안에 들어가리라는 사생결단(死生決斷)의 각오를 했기 때문에, 목주 선사께서 잡았던 멱살을 밀어내시는데, 밀어내는 그 팔을 잡고 전신의 힘을 다해 늘어지면서 한 발을 사립문 안에 들여 놓았습니다. 그렇게 서로 밀고 당기다가 목주 선사께서 있는 힘껏 사립문을 닫는 순간, 사립문 안에 들여놓았던 운문 스님의 다리가 여지없이 부러져 버렸습니다.

운문 스님이 “아야!” 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자신이 지른 그 소리에 화두가 박살이 나서 진리의 눈이 활짝 열렸습니다.

운문 선사와 같이 이러한 대용맹심, 생사를 떼어놓고 법을 구하는 이러한 자세를 갖춘 사람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운문 선사께서 이렇게 깨달음을 얻으신 이후로는, 불편한 몸으로 일생토록 시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그 넓은 중국 대륙에 크게 종풍(宗風)을 드날리셨는데, 하루는 천오백 대중을 지도하고 계시던 설봉(雪峰) 선사의 회상을 찾아갔습니다.

일주문 앞에 당도해서 시자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조실방 앞에 가서 ‘스님, 어찌해서 항상 목에 철가(鐵枷-죄인의 형틀)를 쓰고 계십니까?’ 하고 여쭈어라. 그리고 설봉 선사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이것은 네 말이라고 하여라.” 라고 하셨습니다. 시자가 시키는 대로 설봉 선사 방문 앞에 이르러,

“조실스님, 어찌해서 항상 목에 철가(鐵枷)를 쓰고 계십니까?” 하자, 설봉 선사께서 벼락같이 문을 열고 나오셔서 시자의 멱살을 잡고 다그치셨습니다.

“일러라, 일러라!” 시자가 대꾸를 못 하고 우물쭈물하니, 설봉 선사께서

“그것은 네 말이 아니다.” 하시고는 잡았던 멱살을 밀쳐버리셨습니다. 그러자 시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제 말입니다.”

“아 이놈아, 그것은 네 말이 아니다.”

시자가 끝까지 자기 소리라고 우기니, 설봉 선사께서 유나(維那)스님을 불러 운집종(雲集鐘)을 치게 하셨습니다. 천오백 대중이 큰 방에 다 모이니 선사께서 이르셨습니다.

“이 놈이 바른 말을 할 때까지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놓고 패라.”

그리하여 대중들이 시자를 밧줄로 묶어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놓고는 패려고 하자, 시자가 그때서야

“제 말이 아닙니다.” 하고 실토를 하였습니다.

“그러면 누구의 말이냐?”

“운문 선사께서 시키신 대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운문 선사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일주문 밖에 계십니다.”

그러자 설봉 선사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백 대중을 지도할 수 있는 안목(眼目)을 갖춘 훌륭한 선지식이 오셨으니, 대중은 일주문 앞에 가서 그 스님을 정중히 모셔라.” 하고 이르셨습니다.

성인(聖人)이라야 능히 성인을 안다고, 도안(道眼)이 열리면 일거일동(一擧一動)에 상대방의 살림살이를 다 아는 법입니다.

“스님, 어찌해서 항상 목에 철가(鐵枷)를 쓰고 계십니까?” 하는 물음에 “오백 대중을 지도할 선지식이 왔다.”고 하셨으니, 이 도를 깨달으면 이처럼 묻는 뜻이 어디에 있는지 척척 아는 안목(眼目)을 갖추게 됩니다.

석일(昔日)에 영수 여민(靈樹如敏) 선사께서 수백 명 대중을 거느리고 참선지도를 하셨는데, 20년 동안 수좌(首座) 자리를 비워놓고 계셨습니다.

“수좌스님은 언제 오십니까?” 하고 대중이 물으면,

“이제 태어났다. 태어나서 소를 잘 먹이고 있다.” 하시며, 태어나서 지금 수도(修道)를 잘 하고 있다는 그러한 말씀만 20년간 계속 해오셨습니다.

그러다 근 20년이 지나서 하루는,

“오늘은 수좌스님이 올 것이니, 모든 대중은 맞을 준비를 하라.” 하고 이르셨습니다. 조실스님의 명(命)이 떨어지자, 대중이 일시에 온 도량을 청소하고는 가사 장삼을 수(垂)하고 산문(山門) 앞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되자 스님 한 분이 산문을 들어오시는데, 운문 선사께서 제방(諸方)을 행각(行脚)하시다가 영수 선사 회상을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영수 선사께서,

“수좌 자리에 모셔라!” 하니, 대중들이 운문 선사를 수좌 자리에 모셨습니다.

그러자 대중 가운데 한 스님이 칼을 가지고 와서 운문 선사의 정수리에 대고는,

“이 때를 당해 어떠합니까?” 하고 대번에 시험을 하였습니다.

이에 운문 선사께서 주저하지 않으시고,

“피가 하늘세계 범천궁(梵天宮)까지 넘쳤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그 스님이 칼을 거두고 큰 절을 하였습니다.

도안(道眼)이 열리면 어떠한 물음을 던져도 이렇게 답이 척척 나오는 법입니다. 멱살을 잡고 이르라고 할 적에는 이르라고 하는 낙처(落處)를 먼저 압니다. 칼을 이마에다 대고 이르라고 해도 그 낙처를 먼저 알기 때문에 “피가 범천궁(梵天宮)까지 넘쳤다.”고 답한 것입니다.

또한 20여 년간 수좌자리를 비워놓고, 태어나는 것, 크고 있는 것, 행각하고 있는 것을 훤히 알아, 오늘 온다 하여 대중으로 하여금 수좌 자리에 모시게 하니, 이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밝게 깨달으면 과거 현재 미래의 삼생까지도 꿰뚫어 보는 법입니다. 이 같은 안목의 일구법문(一句法門)은 세상에 있는 황금덩어리를 다 가져온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최고의 견성법(見性法)은 다겁생에 만나기 어려운 것이니, 선지식의 바른 법문을 온전히 받아들여 간절한 일념에서 뼈골에 사무치는 화두를 참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대중, 필경(畢竟)에 한 마디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紅霞穿碧海〈홍하천벽해〉요

白日繞須彌〈백일요수미〉로다.

붉은 안개는 바다 밑을 꿰뚫고

밝은 해는 수미산을 돎이로다.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고 하좌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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