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진제법원대종사 하안거 결제법어

Posted by 정암
2012.06.01 16:08 불교자료실/법어

중국으로 건너가 선의 안목을 점검하다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法遠

  〔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

 

진제법원대종사

사람 사람의 면전(面前)에 참나가 있음이니, 모든 대중은 참나를 보느냐?

面門出入見還難〈면문출입견환난〉이요

無位眞人咫尺間〈무위진인지척간〉이라.

去路一身輕似葉〈거로일신경사엽〉이나

高名千古重如山〈고명천고중여산〉이로다.

사람 사람의 면전에 참나가 출입하는데 또한 보기가 어려움이요,

차제 없는 참사람은 지척간에 있음이로다.

길을 가는데 나뭇잎사귀와 같이 가벼움이나

그 이름은 높고 높아 무겁기가 천년 만년토록 산과 같음이로다.

 

밝은 정안(正眼)을 갖춘 이는 일용(日用)에 촌보도 참나를 여의지 아니하고 항시 수용함이나, 참나를 모르면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 항시 면문(面門)에 출입해도 보기가 어려움이로다.

 

이 모양 없는 참나 가운데 우주의 모든 진리가 다 갖추어져 있음이로다. 그래서 참나를 깨달으면 법왕(法王)이 되어 만인에게 진리의 전(廛-가게)을 펴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고,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수완을 임의자재하게 쓰게 됨이로다.

 

금일은 하안거 결제일이라, 과거 현재 미래에 지은 태산과 같은 업이 송두리째 녹아 없어져야 모든 고통이 없게 됩니다. 그러니 승속을 막론하고 모든 수행자들은 ‘금생에 이 법을 만난 김에 참나를 알고 이 몸뚱이를 바꿔야 되겠다’ 작심을 하고 오매불망 간절히 화두와 씨름해야 합니다.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이 화두를 들고 일상생활 하는 가운데 오매불망 간절히 챙기고 의심해야 합니다.

 

가나오나 앉으나 서나 “어떤 것이 참나던고?” “어떤 것이 참나던고?” 천번 만번 의심을 밀고 밀어서 빈틈이 없게 되면 문득 참의심이 시동 걸려 흐르는 물과 같이 항시 끊어지지 않고 흘러가게 됩니다. 그러면 밤이 지나가는지 낮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되고,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다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무르익어 흘러가다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면 억만년 전 자기의 참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부처님, 모든 도인과 더불어 진리의 낙을 같이 누리고 대장부의 활개를 치게 됩니다.

 

이것이 견성(見性)하는 과정이고, 이 일을 밝히는 일이 가장 고귀하고 참으로 값어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참선삼매에 들면 모든 마음의 갈등이 다 없어져 항시 편안한 나날이 흘러가므로 여생(餘生)이 즐겁습니다. 미워하는 마음, 고와하는 마음, 시기, 질투, 시비갈등 등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가 다 없어지고 평안한 삶을 누리게 되니, 참선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또한 인연이 다 되면 이집에서 저집으로 이사 가듯 몸을 바꾸니 참으로 쾌활자재합니다.

 

모든 사부대중 여러분!

오늘 있다가 내일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중생은 과거 현재에 지은 죄업이 태산과 같기 때문에, 오늘 미루고 내일 미루고 게으름을 부리면 염라대왕에게 잡혀가서 곤욕을 치러야 됩니다. 그러니 이 고준한 법문을 새겨들어 한화잡담과 시비장단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가나오나 앉으나 서나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어떤 것이 참나던고?” 하고 오매불망 간절히 의심하고 또 의심해나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산승이 2001년 음력 2월에 2002년도 국제무차선대법회 개최를 앞두고 명실공히 중국의 선의 안목을 대표하는 대선지식 한 분을 초빙하여 모든 세계인들에게 선(禪)의 법공양(法供養)을 베풀기 위해서 중국 9개의 선종본산을 참방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면면히 이어 내려오고 있는 부처님의 심인법(心印法)은 천오백여 년 전에 인도에서 중국대륙으로 건너와 선종(禪宗)으로 그 꽃을 피웠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60년 공산치하 동안 스님들이 산중에서 수도를 할 수 없는 여건이 되어 형식적으로 절만 지킬 뿐 수행이 제대로 여법히 내려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너른 대륙에 한개 반개의 눈 밝은 도인이 있는가 싶어서 스물대여섯 분의 스님들과 같이 선종본산 아홉 군데를 참방(參訪)하여 조실ㆍ방장스님들에게 진리의 고준한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중국을 대표해야 되기 때문에 아무나 청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달마 대사께서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처음 주석하셨던 광덕사(廣德寺)를 방문하니, 달마 대사께서 공양하고 씻으셨다는 수각으로 안내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 유래만 들은 뒤 이조사(二祖寺)를 찾아갔습니다. 이조사를 방문하니 주인은 없고 절만 있기에 참배만 하고 바로 나와서 삼조사(三祖寺)로 갔습니다. 중국 땅이 워낙 너르다보니 약속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밤 10시에 도착하였습니다. 늦은 밤인데도 방장스님을 비롯한 모든 대중이 다 나와서 산문 앞에 두 줄로 서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참배하고 차 대접을 받는 자리에서 방장스님께 한 가지를 물었습니다.

 

“옛날 삼조(三祖-僧璨) 선사께서

至道無難〈지도무난〉이나

唯嫌揀擇〈유혐간택〉이라.

但莫憎愛〈단막증애〉하면

通然明白〈통연명백〉하리라.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나

오직 간택을 꺼림이로다.

다만 증애가 없으면

텅 비어 명백하리라.

라고 법문을 하셨는데, 방장스님께서는 간택(揀擇)이 없을 때에는 어떻게 보십니까?” 하니, 그 방장스님이

“이 신심명(信心銘)을 잘 번역하여 포교에 주력하겠습니다.” 하고 답하였습니다.

다음날 삼조사를 나와 사조사(四祖寺)에 가서 방장스님을 찾아뵙고 묻기를,

 

“달마 대사께서 소림굴에서 9년 면벽(面壁)하신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하니, 방장스님이 답을 못하였습니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오조사(五祖寺)를 방문하여 참배를 마치고 공양을 하는 자리에서 방장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옛날 오조(五祖-弘忍) 선사께서는 때로는 점수법(漸修法)을 설하시고 때로는 돈오무생법(頓悟無生法)을 설하셨는데, 지금은 어떠한 법문을 설하십니까?”

 

이곳 방장스님 역시 물음에 답을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걸음으로 육조(六祖-慧能) 선사께서 주석하셨던 보림사(寶林寺)를 방문하여 방장스님에게 묻기를,

 

“육조 선사께서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이라는 법문을 자주 하셨는데,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하니, 이곳 방장스님 역시 명쾌한 답이 없었습니다.

 

그런 후로 운문(雲門) 선사께서 주석하셨던 운문사(雲門寺)를 방문하여 방장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옛날 운문 도인이 취암(翠巖) 선사 회상(會上)에 있을 적에, 취암 선사께서 해제시에 상당하시어 법문하시기를, ‘석 달 동안 모든 대중을 위해서 가지가지의 법을 설했는데, 시회대중은 노승의 눈썹을 보았느냐?’ 하고 대중에게 물으시니, 운문 선사가 여기에 ‘관(關)’이라 답을 했는데, 이 ‘관(關)’자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불조(佛祖)의 밀전(密傳)의 경지를 우리가 어찌 논할 수 있겠습니까?”

 

방장스님이 이렇게 나오니, 그 걸음으로 나와서 임제원(臨濟院)을 방문하였습니다. 임제 도인의 회상(會上)에 가보니 시변(市邊)에 있었는데, 마침 대중이 저녁예불을 마치고 나오길래 선 채로 조실스님과 인사를 나누고는 산승이 말하기를,

 

“옛날 당당했던 임제 선사의 가풍은 사방을 둘러봐도 볼 수가 없고, 도량에는 고탑(古塔)만 우뚝하구나.” 하고 물음을 던지니, 한 마디 척 나와야 되는데 아무런 대꾸가 없이 깜깜하였습니다.

 

그래서 공양 대접만 받고 또다시 수백 리 떨어진 조주원(趙州院)으로 향했습니다. 조주 선사의 회상도 역시 마을 가운데 있었는데, 하룻밤을 묵고 나니 다음날 응접실에서 방장스님이 일행을 맞았습니다. 차를 한 잔씩 돌리는데 마침 응접실 벽에 조주 선사의 ‘끽다거(喫茶去)’라는 법문 한 구절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 구절은 그 옛날 위대한 조주 선사께서 쓰셨던 법문입니다.

 

하루는 조주 선사의 조실방에 어느 납자(衲子)가 들어오니, 선사께서 말씀하시길,

“여기에 이르렀는가?”

“이르지 못했습니다.”

“차 한 잔 먹게.” 하셨습니다.

또 한 수좌가 들어오니, 똑 같이 물으시기를,

“여기에 이르렀는가?”

“이르렀습니다.”

“차 한 잔 먹게.” 하셨습니다.

옆에 있던 원주(院主)가 이 모습을 지켜보고는 조주 선사께 여쭈었습니다.

“조실스님! 어째서 ‘여기에 이르렀다’ 해도 ‘차 한 잔 먹게’ 하고, ‘이르지 못했다’ 해도 ‘차 한 잔 먹게’ 하십니까?”

하니, 조주 선사께서

“그대도 차 한 잔 먹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조주 선사께서는 누구든지 찾아와 법을 물으면 ‘차 한 잔 먹게’ 하셨습니다.

산승이 그 글귀를 보고는

“조주 선사께서는 누가 와서 물으면 ‘차 한 잔 먹게’라고 하셨는데, 조주 선사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 방장스님이 앞에 놓여있는 찻잔을 들어 산승에게 내밀기에, 산승이

“그것은 산승이 받아먹지만, 화상(和尙)도 또한 나의 차 한 잔을 먹어야 옳습니다.”

하였습니다. 이 말의 낙처(落處)를 척 알아야 하는데 역시 더는 답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홉 군데를 다 방문하였지만, 모두 벙어리 조실ㆍ방장일 뿐 내실(內實)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찻잔을 내미는 조주원 방장 정혜(淨慧) 선사를 중국의 대표로 하여 2002년 10월 20일 국제무차선대법회에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한국불교 역사상 자신의 안목을 점검받고 인가받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간 일은 많았지만, 이처럼 중국의 안목을 점검하기 위해 건너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으로는 서옹(西翁) 선사의 서한을 들고 가서 임제종의 대표로 종현(宗玄) 선사를 모시게 되었는데, 막상 국제무차선대법회를 개최하여 법문을 들어보니 중국이나 일본에 실다운 안목을 갖춘 이가 없고, 부처님의 심인법(心印法)이 오직 한 가닥 한국에 머물러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선종의 본산국(本山國)인 중국에는 공산화 60년 동안에 선법(禪法)이 없어짐으로 인해 더 이상 안목자(眼目者)가 없게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사부대중은, 한 가닥 밝은 부처님의 심인법(心印法)이 단절되지 않고 천추만대에 면면히 이어지도록 바르게 참선법을 익혀 정진에 정진을 더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필경에 일구(一句)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手握金輪淸四海〈수악금륜청사해〉하니

聖躬彌億萬斯年〈성궁미억만사년〉이로다.

손에 금륜을 잡아 사해를 맑히니

억만년토록 성인들이 가득함이로다.

〔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고 하좌(下座)하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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