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변심처럼 분하고 원통한 마음으로 화두들라”

“애인의 변심처럼 분하고 원통한 마음으로 화두들라”

2011년 09월 24일 by jeungam

    “애인의 변심처럼 분하고 원통한 마음으로 화두들라” 목차

 

“애인의 변심처럼 분하고 원통한 마음으로 화두들라”

 

▲ 미국인들이 진제 스님의 간화선 실참 특강에 참여해 명상을 하고 있다.

진제 스님, 미국학생들과 간화선 실참

참선 이유와 화두 참구 방법 등 설명

태어나기 전 ‘참나’에 대한 화두 제시

참선 통해 진리의 세계 밝힐 것 당부

간화선 세계평화 대법회에는 동화사 수좌스님들이 나흘간 유니온신학대 학생들과 함께 실참 시간을 가졌다. 수좌스님들은 매일 교대로 학생들과 간화선에 대한 특강과 명상을 함께했다. 외국인들은 수좌스님들의 설명에 따라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모습으로 좌선을 하고 눈을 감은 채 명상에 잠겼다. 특히 16일에는 진제 스님이 직접 실참에 참여해 외국인들에게 간화선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했다.

진제 스님이 간화선 실참 특강을 위해 유니온 신학대 강의실에 들어서자 주위는 금방 숙연해졌다. 스님이 법석에 오르자 미국인들은 진제 스님의 말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스님은 “왜 참선을 해야 하는가”라는 말로 특강을 시작했다. 진제 스님은 “육신은 거짓 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 어떤 것이 참나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참선을 하면 마음의 갈등과 공포 불안 초조 갈등이 사라지고 편안한 진리를 누릴 수 있다. 하늘과 인간 세계의 진리의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생활 속에서 참나를 밝히는 참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진제 스님은 참나를 찾기 위해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의 어떤 것이 참나인가’라는 화두를 들고 천번 만번 생각하라고 설명했다. 간절한 의심과 참선 끝에 비로소 진아(眞我)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좌선을 위한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알기 쉬운 비유를 통해 설명했다. 좌선을 할 때는 허리와 가슴을 펴고, 손을 배에 붙이고 2m 앞을 바라보면서 화두를 들고 계속해서 의심하라고 당부했다. 스님은 특히 의심의 간절함을 강조했다.

진제 스님은 “삼대독자 외아들의 죽음처럼, 백년가약을 맺은 애인의 변심처럼 분하고 원통한 마음으로 화두에 몰두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화두 참선 중 의심 덩어리가 흐르다가 사물을 보거나 소리를 듣는 어느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난다고 설명했다. 화두가 박살이 날 때 비로소 깨달음의 길을 열 수 있다.

스님은 “화두 일념삼매에다 화두가 박살이 나면 어떤 화두도 팍팍 나오게 된다. 이렇게 바른문이 열리면 법문도 척척 나온다”고 말했다.

진제 스님은 법문 도중 중국 항소의 투자 도인과 수좌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청중들에게 화두를 통한 깨달음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투자 도인의 명성이 자자하자, 어느 날 한 수좌가 찾아왔다. 투자 도인은 “그대는 어디서 왔는고”하고 물었다. 그러자 수좌는 “중국 항소에서 왔습니다”고 답했다. 그러자 도인은 “항소의 천하제일 보검을 가져왔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수좌는 대답대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진제스님
▲ 진제 스님이 간화선 실참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진제 스님은 일화를 설명한 뒤 청중들에게 수좌가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킨 이유에 대해 물었다. 청중들이 아무도 답을 못 하자 스님은 폴 니터 교수에게 “연초에 화두를 받아갔으니 답을 해보라”고 말했다. 강의실은 순간 웃음바다가 됐고, 폴 니터 교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바로 지금 여기에서, 바로 이 순간 시작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진제 스님이 “천리 만리에 없는 소리를 하는구나”라고 말해 청중들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청중의 웃음이 그치고 주위가 고요해지자 스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진제 스님은 “참선을 해서 정안(正眼)이 열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매진해야 화두가 열린다. 금생에 화두에 매진해서 마음의 고향에 이르러서 참나의 주인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진제 스님은 화두 특강 후 청중들과 대화를 통해 간화선과 선 수행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특강 때 스님이 소개한 일화에서 도인이 땅을 가리킨 이유에 대해 한 청중이 “칼의 원료가 땅에서 나오기 때문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뒷북치는 소리다. 화두의 답은 번개처럼 빠르게 나와야 한다. 화살은 이미 서역을 가로 질러 날아가고 있다. 불쌍하도다”라고 답했다.

또 다른 청중은 스님이 깨달음을 얻은 시기에 대해 묻자 스님은 자신의 행장 소개로 답변을 대신했다.

진제 스님이 33세이던 1967년 정미년 하안거 해제일에 향곡 선사가 해제 법문을 위해 법상에 올랐다. 진제 스님은 선사에게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성인이 알지 못하는 진리 한 마디를 알려주십시오”라고 청했다. 그러자 선사는 “구구는 팔십일이다”라고 말했다. 진제 스님은 “그건 모든 부처와 성인이 아는 진리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향곡 선사는 “육육은 삽십육이다”고 말할 뿐이었다. 이에 진제 스님은 아무 말 없이 절을 올리고 방을 나섰다. 그러자 향곡 선사도 ‘오늘 법문을 다 했다며’ 조실 방으로 돌아갔다.

진제 스님은 다음 날 장삼을 갖춰 입고 조실방으로 찾아갔다. 스님은 “부처의 눈과 지혜의 눈은 묻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의 눈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향곡 선사는 “비구니 노릇은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고 답했다. 그러자 진제 스님은 “금일에서야 선사님의 살림살이를 바로 봤습니다”고 말했고, 향곡 선사는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봤느냐”고 물었다. 선사와 스님은 10년을 같은 절에서 지낸 사이였다. 진제 스님은 “관(關)!”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선사는 “옳고, 옳다”하시며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전법의 인증서를 진제 스님에게 내리며 산[生] 진리를 맡긴다고 말했다.

진제 스님은 “스승으로부터 이런 인증을 받지 못하면 사견에 떨어지고 만인의 지도자가 되지 못 한다. 나를 찾아와 화두를 묻고 답을 하면 이런 인증서를 내릴 것이다. 참선에 매진해서 모두 도인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신학생, 간화선의 매력에 빠지다

Julia Burkey, 법회부터 실참까지 참여

“미국인 특성과 반대 오히려 장점”

 

▲ 유니온 신학대 재학생 쥴리아 버키

 “간화선은 미국인들의 부족한 점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목회자가 되려고 공부 중인 제게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유니온 신학대에 재학 중인 쥴리아 버키(Julia Burkey, 24)는 진제 스님의 실참 특강 후 한국 간화선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쥴리아는 한국 불교를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인도와 티벳 명상과 기독교 수행을 지속해 왔다. 그런 쥴리아에게도 간화선은 어렵게 느껴졌다.

“다른 명상들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간화선은 좀 어렵습니다. 화두는 들고, 마음은 비우라고 하는데, 이것을 동시에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다른 명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쥴리아는 진제 스님의 간화선 실참 특강에서 시종일관 좌선을 하고 참선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열린 간화선 평화 대법회에도 참석하는 등 간화선과 한국 불교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육법공양을 하고 대북을 올리며 진제 스님의 법회를 알리는 모습 등이 쥴리아의 눈에는 한편의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쥴리아에게 진제 스님의 법문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네 차례에 걸친 한국 스님들과의 간화선 실참과 특강에 참여한 덕분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쥴리아는 간화선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미국인들에게 널리 확산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간화선이 미국인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쥴리아는 “미국인들은 말이 많고 빠른 답변을 원하는 특성이 있다. 간화선은 이런 것을 끊어버린다. 이런 수행이 현대인들에게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禪 명상은 이웃종교 이해 지름길”

유니온 신학대, 정현경 교수

10년 전부터 불교명상 교육

 

 

▲ 유니온 신학대 정현경 교수

 진제 스님의 실참 특강에 앞서 동화사 수좌스님들과 뉴욕 보리사 주지 원영 스님 등은 유니온 신학대 학생들과 4일간 간화선 실참과 특강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좌선을 한 상태로 스님들의 영어 법문을 들으며 화두를 들었다. 스님들은 직접 학생들의 좌선 자세를 바로 잡아주는 등 학생들이 화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진보적 학풍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유니온 신학대는 10년 전부터 매년 ‘불교 명상과 불교선사들과의 대화’를 가르치고 있다. 이 수업은 동아리 모임을 이끌던 정현경 교수가 학교측에 종교평화를 위한 필요성을 적극 강조하면서 정규 수업으로 자리 잡았다. 21세기 신학교육과 종교간 이해를 위해 꼭 필요한 영성훈련이라는 정 교수의 생각이 통한 것이다.

“15년 전 처음으로 학교에 불교명상 강좌 개설을 제안 했습니다. 신학대에서 불교명상을 한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반대가 많았습니다. 동아리 모임으로 시작한 것이 점차 호응이 높아져 지금은 3학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정현경 교수는 학생들과 다른 종교의 사원을 탐방하는 등 다양한 체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1월이면 미얀마, 쿠바 등 전 세계 평화운동 지역을 학생들과 함께 방문한 뒤 학교로 돌아와 종교간 평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토론한다. 정 교수는 “말이 아닌 몸과 감성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선 명상은 다른 종교를 이해하는 어렵지만 빠른 길이다”고 말했다.

미국 학생들은 명상 경험이 부족하다. 특히 요즘 젊은 학생들은 기계 문명의 발달로 잠시도 가만히 있을 틈이 없어 명상을 위해 한 참 동안 앉아 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유니온 신학대 학생들은 금방 불교 명상에 적응했다.“내가 무엇인지, 나는 이 세상에 왜 왔는지에 대한 고민과 질문이 익숙한 학생들입니다. 한 학기가 지날 때면 학생들 사이에서 커다란 명상의 힘이 느껴집니다. 강의 종료 후에도 학생들 스스로 모임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명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유니온 신학대는 불교명상 수업의 호응에 힘입어 내년 ‘불교사목’ 수업을 개설한다. 다양한 종교들과의 교류와 평화를 추구하는 정현경 교수와 학교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정현경 교수는 “학교 측에서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이 쉽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 평화와 이해를 위해 꼭 필요한 교육입니다. 21세기에는 각 종교들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고 말했다.

<현대불교신문 박기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