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정 진제법원 대종사 동안거 해제 법어 발표

Posted by 정암
2013.02.22 13:07 불교자료실/법어

조계종 종정 진제법원 대종사 동안거 해제 법어 발표

대용맹심을 발하여 화두를 타파할 때가 진정한 해제

진제 법원 대종사

조계종종정 진제법원 대종사는 2월 24일 동안거(冬安居) 해제를 맞아 법어를 내리고 대중들의 부단한 정진을 당부했다.

 

진제 대종사는 “이번 안거 동안에 과연 얼마만큼 진실하게 참구하였는지 돌이켜보아야 한다”며 “화두일념(話頭一念)에 푸욱 빠져 모든 보고 듣는 것을 다 잊는 경계가 와야 하거늘, 그리지 못한 데에는 반드시 부족한 참학의지(參學意志)가 있는 것이니 부끄러운 줄 알아, 대용맹심(大勇猛心)을 발하여 화두를 타파할 때가 진정한 해제임을 마음에 굳게 새길지어다”라고 이번 동안거 기간 동안 자신의 수행에 대해 점검하도록 당부했다.

 

또한 진제법원 대종사는 결제 해제에 간여하지 말고 오로지 일상생활 속에 오매불망 간절히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가?”하고 의심하고 의심하여 중생의 근본업인 탐진치(貪嗔癡) 삼업을 몰록 제거하고 대도(大道)를 이루어 부처님과 같은 대지혜(大智慧)와 무량대복(無量大福)을 누리기를 기원했다.

 

한편,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에서 전국 선원의 정진대중 현황을 정리한 <壬辰年 冬安居 禪社芳啣錄>에 의하면 전국 98개 선원(총림 5곳, 비구선원 60곳, 비구니선원 33곳)에서 총 2,217명(총림 207명, 비구 1,223명, 비구니 787명)의 대중이 용맹 정진한 것으로 집계됐다.

 

안거(安居)란 동절기 3개월(음력 10월 보름에서 차년도 정월 보름까지)과 하절기 3개월 (음력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씩 전국의 스님들이 외부와의 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에 전념하는 것으로, 출가수행자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한 곳에 모여 외출을 삼가고 정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안거는 산스크리트어 바르사바사의 역어로, 인도의 우기(雨期)는 대략 4개월 가량인데, 그 중 3개월 동안 외출을 금하고 정사(精舍)나 동굴 등에서 수행하였습니다. 우기에는 비 때문에 유행하는 수행이 곤란하고, 또 초목과 벌레 등이 번성해지는 시기이므로 모든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기 중에는 지거수행(止居修行)을 하도록 규정한 것이 안거의 기원입니다.

 

〔 임진년 동안거 종정예하 해제법어 〕

 

百丈禪師백장선사의 再參意旨재참의지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法遠

〔 法床에 올라 拄杖子를 들어 大衆에게 보이시고, 〕

王子生來便自尊<왕자생래변자존>이요,

只應日日在金門<지응일일재금문>이라.

從來不顧人間事<종래불고인간사>하고

唯識爺爺寶殿存<유식야야보전존>이로다.

왕자가 남에 문득 스스로 높음이요,

다못 응당히 금문의 집에 있음이라.

옴으로 쫓아 인간의 일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아비끼리 보배궁전에 있음이로다.

중생의 근본 업(根本業)은 탐진치(貪嗔癡)라. 세 가지 근본 업을 제거하지 못하면 편안한 날이 없으리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사 탐진치 삼업을 몰록 제거하고 대도(大道)를 이루어 부처님과 같은 대지혜(大智慧)와 무량대복(無量大福)을 누리겠는가.

금일(今日)은 동안거 해제일이라, 모든 수행자들은 이번 안거 동안에 과연 얼마만큼 진실되게 참구하였는지 돌이켜보아야 함이로다. 게으름과 망상으로 헛되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았는가, 바깥경계에 끄달려 망아지처럼 휘젓고 다니지 않았는가, 몸뚱이에 끄달리고, 먹는 데 먹지 않는 데 집착하지 않았는가 돌이켜보아야 함이로다. 사위의(四威儀) 가운데 화두일념(話頭一念)에 푸욱 빠져 모든 보고 듣는 것을 다 잊는 경계가 와야 하거늘, 그러지 못한 데에는 반드시 부족한 참학의지(參學意志)가 있는 것이니 부끄러운 줄 알아, 대용맹심(大勇猛心)을 발하여 화두를 타파할 때가 진정 해제임을 마음에 굳게 새길지어다. 해제다 하여 마음이 이미 선방 밖에 가 있고 법문하는 이 순간에도 마음이 밖으로 치달린다면 수행자로써 참으로 부끄러운 자세이니 어느 세월에 탐진치 삼업을 다 녹이고 시은(施恩)을 다 갚으리오.

 

그러니 모든 대중들이여, 결제 해제에 간여하지 말고 오로지 일상생활 속에 오매불망 간절히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가?”하고 날마다 천 번 만 번 의심하고 의심하여 일념삼매가 도래하도록 혼신의 정진을 다할지어다.

 

석일(昔日)에 마조 도일(馬祖道一)이 출가하여 회양(懷讓)선사 회상에서 지도를 받아 참선하였습니다. 하루는 도일스님이 좌선하고 있는데 회양선사께서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좌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회양선사께서 도일스님이 좌선하고 있는 옆에 기왓장을 가지고와서 갈고 계시니, 도일스님이 여쭈었습니다.

 

“스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고자 하노라.”

“스님, 기왓장이 어떻게 거울이 될 수 있습니까?”

 

이에 회양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좌선해서 어찌 성불하리오.”하시니, 도일스님이 물었습니다.

“그러시면 어찌해야 됩니까?”

“수레가 가지 않을 때에 소를 때려야 옳으냐, 수레를 때려야 옳으냐?”

이 한 마디에 도일스님이 크게 깨달았습니다.

 

서천국(西天國) 반야다라존자(尊者)께서 예언하시기를,

“백칠십 년 후에 회양존자 아래에 한 망아지가 출현하여 천하 사람들을 밟아 죽이리라.”하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마조선사 아래에 84인의 선지식(善知識)이 나셨는데, 하루는 마조도인이 백장(百丈) 시자를 데리고 산골 들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도중에 농사짓는 큰 저수지에서 놀던 오리떼가 인기척이 있으니 푸울 날아갔습니다.

 

이에 마조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저기 날아가는 것이 무엇인고?”

“들오리입니다.”

“어디로 날아가는고?”

“저 산 너머로 날아갑니다.”

 

시자가 이렇게 답하자마자 마조선사께서 시자의 코를 잡아 비트니 시자가,

“아야!”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에 마조선사께서

“어찌 날아갔으리오.” 하셨습니다.

 

볼 일을 다 보고 백장 시자가 마조선사를 모시고 절에 돌아와서는 자기가 거처하는 방문을 걸어잠그고,

 

“마조도인이 ‘저 오리가 어디로 날아가는고?’하고 묻는데 ‘저 산 너머로 날아가고 있습니다.’하니 어째서 코를 비틀었는고?”

 

이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에 들어갔습니다.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들어 깊이 참구하다가 칠 일만에 화두를 타파하여 마조 조실스님 방 앞에 가서 말하기를,

 

“조실스님, 어제까지는 코가 아프더니 이제는 아프지 않습니다.” 하니 마조선사께서 다른 시자를 불러 운집종을 치게 하였습니다.

 

대중이 법당에 다 모여 좌정하고 있는데 마조선사께서 법상(法床)에 올라 좌정하고 계시는 차제에, 백장 시자가 들어와 예삼배를 올리고 나서는 절하는 배석자리를 걷어 둘둘 말아 어깨에 메고 법당을 나가버렸습니다. 이에 마조선사께서도 법상에서 내려와 조실방으로 돌아가 버리셨습니다.

 

금일 임진년 동안거 해제일에 시회대중(時會大衆),

백장시자가 배석자리를 말아 어깨에 메고 나간 뜻은 어디에 있으며, 또한 마조도인께서 즉시 법상에서 내려와 조실방으로 가신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대중 가운데 답을 할 자 있습니까?

 

〔 대중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

산승이 두 분의 거량처(擧量處)를 점검하여 대중에게 법의 공양을 베풀겠습니다.

龍袖拂開全體現<용수불개전체현>이요

須彌倒卓半空中<수미도탁반공중>이로다.

임금이 용상에 올라 소매를 잡아 여는데 전체가 드러남이요.

수미산이 반 허공중에 거꾸로 꽂힘이로다.

 

백장스님은 마조선사와 법거량을 한 이후로 일가견(一家見)을 이루어 다른 산중에 가서 지내다가, 수십 년이 지난 후 다시 마조선사를 찾아왔습니다. 마침 마조선사께서 법상에서 정진하고 계셨는데, 백장스님이 들어오자 법상각(法床角)에 걸어 둔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셨습니다.

 

이에 백장스님이,

“이를 바로 쓰십니까. 이를 여의고 쓰십니까?”하고 물으니, 마조선사께서 불자를 다시 법상각에 걸어두셨습니다. 그러고는 백장스님에게 물으시기를,

“네가 장차 두 입술을 열어 어떻게 만 중생을 위해가려 하는고?”하시니, 이번에는 백장스님이 법상각에 걸어둔 불자를 들어보였습니다. 이에 마조선사께서 또 물으시기를,

“이를 바로 씀인가, 이를 여의고 씀인가?” 하시니, 백장스님이 마조선사와 같이 불자를 법상각에 걸어두는 찰나에, 마조선사께서 벽력같이 할(喝)을 하였습니다.

“어억[喝]!”

 

이 같은 마조선사의 할 아래 백장스님이 삼 일간 귀가 먹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모인 대중은 마조·백장 부자간(父子間)의 문답처를 아시겠습니까?

여기에서 분명히 낙처(落處)를 알면 제불제조(諸佛諸祖)와 같이 동참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 大衆이 말이 없음에 이르시기를, 〕

 

이 주장자로 삼십방(三十棒)을 맞아야 옳도다.

마조선사가 맞아야 옳음인가, 백장선사가 맞아야 옳음인가?

대중은 가려볼지어다.

〔 拄杖子로 法床을 한 번 치고 下座하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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