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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토크] 한국불교대표 선지식 진제 스님(동화사 조실)
“간화선, 자꾸 접하다 보면 다 알게 된다”
“폴 니터 교수님께서 수만 리 먼 길을 오셔서, 한국 간화선을 잘 배워 세계 속에 동양 정신문화를 널리 홍보하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불명 진아(眞我)를 선사합니다. 동양 정신문화의 골수인 선법을 온 세계에 굴려서 세계가 태평하고, 만민이 태평의 노래를 부르고, 초목이 수려함이로다.”
구랍 31일 대구 동화사 염화실에서 진제 스님은 경허-혜월-운봉-향곡으로 이어져온 법을 미국인 가톨릭 신학자 폴 니터에게 전했다.
1월 2일 다원주의 신학자 일인자 폴 니터는 “진제 스님은 이제 나의 스승이다. 저에게 ‘진아’라는 불명을 주었고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라는 화두도 주셨다. 그래서 며칠 동안 계속 생각을 했는데 처음으로 화두에 대해 대답해 보고 싶다”며 진제 스님에게 점검을 자청했다.
진제 스님은 니트 교수의 대답에 방(棒)과 할(喝) 대신 박장대소했다. “생각을 놓고 간절히 간절히 일념이 지속 돼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일념 상태에서 모든 보고 듣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삼매에 들어야 함을 명심하라”고 일렀다.
진제 스님은 참선은 종교가 아님을 강조한다. 참선은 지혜를 계발하고 안락국토에 이르는 대자유를 얻는 수행법일 뿐이다.
“한국의 간화선은 정신문화의 축입니다. 전쟁, 시기, 질투, 시비에서 전쟁과 갈등, 싸움이 벌어집니다. 모든 사람이 생활 속에 참나를 밝히는 선 수행을 꾸준히 연마하면 갈등의 원인은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나만 위대하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 없어집니다. 동양정신의 근본인 참선이 마음을 밝혀 지혜와 자비로움이 가득하면 모든 세상과 인류가 한 집이고 한 몸이 됩니다.”
스님은 선의 생활화ㆍ세계화를 서원해왔다. 세계불전전산화협의회 후원자로 한국 선불교의 보급을 위해 꾸준히 활동했다. 그럼에도 스님은 해외에서의 활동은 거의 없었다. 특히 외국인을 직접 지도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진제 스님은 폴 니터 교수에게 한국의 간화선을 전하게 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아주 좋은 학자를 만났습니다. 저 분은 가톨릭 신학자이지만 마음은 불교인입니다.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 선(禪)을 궁구하고 있습니다. 첫 날 가르쳐준 간화선을 철저히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귀가 따갑도록 바른 참선법과 화두 챙기는 법을 일러줬거든요. 아마 서서히 할 겁니다. 한국에 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점검을 받으려고 하더군요. 열정이 보통이 아니에요.”
진제 스님은 니터 교수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만남을 기뻐했다. 진제 스님의 말을 듣던 폴 니터 교수는 “스님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말하는 목소리 톤을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진제 스님과 폴 니터 교수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진제 스님은 이번 만남을 계기로 간화선의 세계화에 한발 성큼 다가가게 됐다. 특히 진제 스님은 퓨전식 간화선이 아니라 한국식 간화선이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니터 교수가 다리를 틀고 앉아서하는 좌선을 어려워하고, 화두공안을 드는 것이 쉽지 않음을 밝혔지만 스님의 뜻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한국 참구법이 제일입니다. 견성을 하고 바른 눈을 갖추려면 한국식으로 세계에 유포해야 합니다. 선문답이나 화두를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것도 처음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꾸 접하다 보면 다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선지식의 법문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됩니다. 그게 진짜 나의 살림이 되고, 큰 힘이 됩니다. 업장 소멸은 물론이고 견성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됩니다.”
사실 화두참구를 어려워하고, 좌선을 하는 동안 무릎이 아픈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행자 모두가 겪어왔다. 스님은 한국 선수행의 참맛을 전하는 것이 목표다.
“산승의 목표는 선이 세계화 되고, 바른 참선으로 진리의 눈을 갖춘 이들이 나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야 부처님 법이 천추만대에 흘러가지요.”
이번에 이뤄진 종교간 대화는 공식적인 일정 외에도 언론사들의 인터뷰가 끝없이 진행됐다. 모든 대담과 법문을 영어로 번역해 책을 편찬할 계획이다.
“폴 니터 교수가 몇 번을 미국에 오셨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미국에서 동양의 정신세계를 온 세계에 알린다면 투쟁도 다툼도 없는 세계가 될 것이라며 초대 했습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제가 몇 번이고 갈 생각입니다. 또한 앞으로 해운정사에 초대를 해서 대화를 나누고, 좋은 세상을 한번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니터 교수는 스님을 뉴욕 유니언 신학대에 초대했다. 또 신학생들과 함께 해운정사에서 하안거에 동참하는 등 불교문화를 체험하며 대화를 이어갈 계획이다.
진제 스님은 남북의 팽팽한 긴장과 종교 갈등을 대화로 해결하고자 폴 니터 교수를 초청했다. 스님은 “세상의 갈등을 풀어나가는데 종교지도자들의 역할과 영향력은 대단하다”며 “종교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불교와 기독교 지도자들이 자주 만나 머리를 맞대고 평화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는 편협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남의 종교를 말살시키고, 지배하라는 가르침을 전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가르쳤다면 자격이 없는 사람이죠. 불교의 자비나 기독교의 사랑은 똑같습니다. 앞으로 종교인들은 자주 만나 어리석은 마음을 송두리째 녹이는 교화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수행을 서로 연마하고 닦아 행하면 개신교나 불교나 동심일체(同心一體)가 됩니다. 세계는 자연히 안락국토가 되고 투쟁이 없는 세계가 되는 것이죠.”
스님은 그동안 개신교의 봉은사ㆍ동화사 땅 밟기, 대구기독교총연합회 불교 폄훼 동영상 배포, 정부의 종교편향 정책 등에 대해서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스님은 “기독교 신자들 자신에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자기 종교를 매몰하는 것이다”며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대한민국 국민의 저질 용심(用心)이다. 저질은 쓰레기통에 싹 묻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스님은 종교의 바른 자세도 강조했다. 스님은 “종교인들이 세(勢)를 확장한다는 것은 우스운 중생심”이라고 지적했다. 진정한 수행자이고 기독교인이라면 모든 이를 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종교라는 것은 순수하게 자기 계발을 해 모든 인류를 안락국토로 인도해 동거동락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허세는 아무 소용도 없거든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고 불교인이 된다고 해도 내실이 없으면 값어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종교인은 내면 세계의 수양을 위주로 하루하루 살아가서 사바세계가 극락세계가 되도록 초점을 맞춰야 하지 힘만 과시하는 것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짓이지요.”
새해 벽두. 진제 스님은 이웃종교인과의 만남을 통해 종교화합의 열쇠를 제시했다. 이미 우리가 갖추고 있던 본래심을 재삼 강조했다.
신묘년 새해 스님은 “참나를 찾는 선 수행을 통해 모든 이의 마음에 갈등이 없고 평화롭고 대자대비의 용심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해 모든 국민이 나라를 부국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도록 하라”며 “2011년에는 종교ㆍ정치인 등 모든 국민이 바라는 것이니 종교간 화합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진제 스님 수행담
1934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진재 스님은 20살에 출가했다. 농사를 지으며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했다. 1954년 오촌 당숙을 따라 해인사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만난 조계종 초대 종정 석우 스님은 진제 스님에게 “이 세상에 나오지 않은 셈치고 도를 한번 닦아보는 게 어떻겠는가?”라고 했다.
“도를 닦으면 어떻게 됩니까?”
“범부가 위대한 부처가 되네.”
진제 스님은 이 말에 감화돼 “위대한 부처가 되는 법이 있다는데 중놀이를 해도 되겠습니까?”라며 부모와 상의한 뒤 행장을 꾸렸다.
스님은 ‘참선을 해서 도를 깨쳐야겠다.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출가생활을 했다. 26살 스님은 성철 스님이 있는 팔공산 파계사를 찾았다. 점검을 받기 위해서였다. 성철 스님은 “나는 몰라, 나는 몰라”하며 응대를 하지 않았다. 스님은 향곡 스님을 찾아갔다.
“일러도 삼십 방이요, 이르지 못해도 삼십 방이다.”
진리의 바른 답을 해도 삼십 방을 맞고 못해도 삼십 방을 맞는다는 것이다. 바로 답을 못하자 “그것도 척 못 나오면서 뭘 알았다고 하느냐?”라며 쫓아냈다.
진제 스님은 오대산으로 들어가 공부를 하다 ‘일생을 이렇게 허송세월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향곡 스님을 다시 찾아가 화두를 내려달라고 했다.
“중국 향엄 선사가 법문하기를 높은 나무에 입으로 가지를 물고 매달려 있을 때 밑에 지나가는 이가 ‘달마 스님이 서역에서 중국으로 오신 까닭이 무엇인고?’하고 물으면 어떻게 답을 하려는가?”
진제 스님은 이 화두를 해결하는데 2년 5개월이 걸렸다. 향곡 스님은 다른 화두를 내렸다.
“모든 부처님과 성인이 알지 못하는 심오한 일구를 일러주십시오.”
“99는 81이니라.”
“그것은 모든 부처님과 성인이 다 아신 진리입니다.”
“66은 36이니라.”
진제 스님이 더 이상 답변을 하지 않고 큰 절을 하고 법당을 나섰다. 향곡 스님은 그제서 “오늘 법문은 이걸로 끝이다”고 했다.
스님은 1967년 향곡 스님에게 법을 인가받았다. 당시 향곡 스님의 선문답이다.
“부처의 눈과 지혜의 눈(慧眼)은 묻지 아니하거니와 납승(衲僧)의 눈은 어떤 것입니까?”
“사고원래여인주(師姑元來女人做: 나이 많은 비구니는 원래 여자가 한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봤느냐?”
“관(關: 빗장)!”
“옳고, 옳다!”
경허(鏡虛)-혜월(慧月)-운봉(雲峰)-향곡(香谷) 선사로 전해 내려온 전통 법맥을 잇게 됐다. 스님은 향곡 스님에게 인가를 받은 후 1971년 부산 해운대 근처에 해운정사를 창건해 참선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1994년에는 동화사 금당선원의 조실을 맡아 참선도량의 선풍을 다시 일으켰다.
진제 스님은…
1934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다. 1954년 해인사에서 석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사미계를 받았다. 이후 스님은 동화사 상원사 각화사 묘관음사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하다. 33세인 1967년 향곡 선사에게 법을 인가 받아 경허-혜월-운봉-향곡 선사로 전해 온 법맥(法脈)을 이었다. 스님은 2003년 조계종 원로의원에 추대됐고, 2004년 조계종 대종사 법계를 품수 받았다. 현재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과 해운정사 조실로 주석하고 있다.
현대불교신문 글=이상언ㆍ이나은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http://news.buddha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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