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륵사 창건주체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무왕 목차
‘익산미륵사지의 재발견’ 학술대회개최
올해초 국보급 유물이 대량 발굴된 익산 미륵사지에 대한 학술대회가 연이어 개최되고 있는 가운데 5월 16일 전북도와 익산시, 고려사학회의 공동 주최로 ‘익산 백제 미륵사지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학계와 전문가 그리고 시민들 300여명이 참석해 원광대학교 60주년 기념관 아트스페이스홀에서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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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박현숙 교수는 ‘백제 무왕의 익산 경영과 미륵사’란 발제문에서 “미륵사 창건의 발원주체는 무왕과 당시 큰 세력을 확보한 사택씨라고 볼 수 있다”며 “신라와 전쟁 패배 후 위기에 몰린 정권돌파를 위해 백성들과 함께 미륵사를 통해 희망의 징표를 삼고자 했을 것”이라며 미륵사 창건주체를 선화공주가 아니라 무왕이라 밝혔다.
이어 그는 “사리봉안기를 보면 기해년인 639년이 서탑에 사리를 봉안한 해이다”며 “사리장엄을 1층 심초석 심주에 한 것으로 보아 동탑까지 축성되는 미륵사 완공은 의자왕대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국대 김상현교수 역시 “사리장엄기에 기록된 백제왕후가 조성한 가람은 미륵사 전체를 의미한다”며 “ 때문에 미륵사 3원 가람에 각각 다른 발원자가 있다는 견해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기존 견해를 재주장했다. 그 예로 불국사 석가탑 다보탑의 경우 모두 대성어간이 주도해 경덕왕때 창건한 점을 미루어 미륵사 3원 가람도 불국사와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수원대 양정석 교수는 “탑 쌓는 효율적 시간이용을 위해 기중기를 사용한 것이 확실하다”며 “하지만 높이가 올라갈수록 하단부가 받는 하중에 대한 건축공학적 계산이 적용돼야 한다. 건축 당시 이미 서탑 하단부는 붕괴조짐이 보였을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발굴된 유물을 통해 미륵사 내부변화를 유추할 수 있지만 터를 잡은 시점, 완공에 걸린 시간, 동원 인력수, 완공시점 등 더 많은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대 나경수 교수는 “사리장엄기 발굴로 서동설화가 거짓임을 드러났지만 문학적 의미까지 퇴색시키는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이번 발굴이 서동설화를 역사적으로 부활시켰고 찬란한 옷을 입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집단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되는 역사적 기록물과 마찬가지로 서동설화에서 당시 백제 지배세력의 무의식, 기대가치를 투사 받을 수 있다”며 “산산이 부서진 미륵사에 비해 창건설화는 지금까지도 창의적 발전을 거듭하며 완전한 작품으로 거듭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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