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참당암, 옛 명성 되찾은 천년고찰… 속세 시름 저만치

고창 참당암, 옛 명성 되찾은 천년고찰… 속세 시름 저만치

2015년 07월 17일 by jeungam

    고창 참당암, 옛 명성 되찾은 천년고찰… 속세 시름 저만치 목차

옛 명성 되찾은 천년고찰… 속세 시름 저만치

암자를 찾아서- ⑥ 고창 참당암

고창 참당암=현대불교신문 조동제 전북지사장 | bud1080@naver.com

 

삼국시대 검단선사가 창건

고려, 조선 전쟁 거치며 전각 파괴

고려후기 대웅전 중수 등 부흥기

명부전과 응진전 한지붕 두가족 ‘눈길’

 

 

고창 참당암선운사 산내 암자인 참당암은 신라고찰로 지금은 사격(寺格)이 위축되었으나 본래는 대찰이었다.

 

 선운사를 거쳐 참당암 가는 길은 계절마다 슬며시 옷을 갈아입는다. 봄이면 녹차 밭 연초록색으로 갈아입고 초여름이면 옅은 노란 상사화 빛으로, 가을에는 붉은 꽃무릇 색인가하면 어느새 중후한 중년 여인의 옷자락과 닮아 있다.

 

삼복 중에 찾아가는 참당암길은 차 한대가 지나갈만한 넓직한 길은 초록의 터널길을 지나야 한다. 잠시 더위를 식히려 도솔천 물이라도 한줌 쥘라치면 금방이라도 쪽빛으로 물들 것만 같다.

 

선운사의 산내암자인 참당암은 애초 선운사의 본찰이었다. 지금은 조계종 24교구 본사인 선운사보다 먼저 창건되었다. 1천년의 세월이 흘러 선운사의 산내암자로 규모가 작아져 지금은 전문적인 수행도량으로 선객들의 왕래만 있고 일반인들의 발길은 뜸한 편이다.

 

 가끔 우편배달부의 오토바이 소리만이 정적을 깨울 뿐이다. 갑자기 밀려드는 정적을 즐기며 느리게 경사진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참당암이다. 작은 개울을 건너 참당암 마당에 들어서면 한창 꽃 망울을 터트린 붉은 백일홍이 객을 맞아 준다.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는 곳

 

참당암의 절 이름은 참 독특하다.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선운사는 삼국시대에 검단선사가 처음 창건했다. 절을 처음 만들 당시 선운산 지역은 도적들이 들끓었는데 검단선사가 이들에게 소금 굽는 법과 숯 굽는 법을 가르쳐 불교도로 교화시키고 생계도 꾸리게끔 했다고 전한다. 또 연못에 살던 이무기를 내쫓고 연못을 메워 절을 세웠다는 선운사의 창건 설화도 바로 참당암에서 시작됐다.

 

참당암은 산내 암자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본래 참당사(懺堂寺) 또는 대참사(大懺寺)로 불렸던 지장참회도량의 거찰로 도솔암의 천장지장보살과 선운사의 금동지장보살 모두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었다고 한다.

 

선운사와 도솔암의 명성에 밀려 사람들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웅전, 약사전과 명부전 같은 특이한 기법의 건물이 남아 있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고즈녁함으로 따지면 선운사의 명성을 능가하는 도량이다.

 

1794년에 임우상(林雨相)이 기술한 〈대참사고사(大懺寺故事)〉와 〈참당사법당기(懺堂寺法堂記)〉에 따르면 참당암은 신라시대 의운화상이 개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참당암 지장전참당암 지장전. 예전에는 약사전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선운사 지장신앙의 핵심전각으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이 그렇듯 고려시대 몽고와 거란의 침입과 조선시대 임진, 정유 양란을 통해 전각은 파괴되었는데 선운사와 참당암 역시 그 아픈 역사를 함께하고 있다.

 

〈대참사사적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창건으로부터 8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대웅보전이 세 번이나 넝쿨 속에 들었는데도 약사존상이 훼손되지 않았고, 여러 차례 전란을 겪었는데도 이제까지 보인(寶印)과 화엄(華嚴), 아주(牙籌), 생회대중(會大衆)과 유나(維那), 찰중(察衆)의 금석문이 완전히 유통되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려 후기에 이르러 참당암은 큰 부흥을 맞게 된다. 임우상의 〈대참사법당기〉에는 1329년(충숙왕 6)에 대웅전을 중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시대 흔적남은 독특한 구조

 

참당암의 전각들은 모두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물 803호 대웅전은 1753년에 다시 지어졌는데, 건물의 뒷면의 구조는 고려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배흘림 기둥, 주두 밑에 깔린 굽받침, 곡선으로 다듬어진 포작의 재료들에서 고려시대의 기법들이 느껴진다.

 

 초석도 옛 건물의 그대로 사용해서 18세기에 지어진 법당의 기둥배열과 다르다. 법당의 앞모습은 조선시대 양식을 보이면서 뒷모습은 고려시대의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참당암 중수기에는 ‘장인을 불러 재목을 헤아리게 하여 한 자 한 치의 썩은 부재도 버리지 않았고, 옛 터에 옛 제도를 그대로 따라서 한 눈금 한 냥의 차이도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어 옛 선조들의 중건(重建)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피해를 입은 뒤 그 위에 덧대어 지어 끊임없이 새로 지어지면서도 옛 흔적을 살려낸 체 옛날의 질서를 고스란히 지키면서 중창되었다.

 

 

참당암 명부전 응진전참당암 명부전 응진전

 

대웅전 바로 옆의 명부전도 특이한 형태의 전각이다. 가로로 긴 형태의 명부전은 지붕은 낮고 기둥간의 간격도 일정하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되지만 명부전과 응진전의 한지붕 두가족임을 알게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총 6칸의 건물이지만 각 3칸씩 응진전과 명부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좌측 3칸 응진전은 기둥 간격이 우측 3칸 명부전 보다 기둥 간격이 좁다. 법당의 성격에 맞추어 자유롭게 계획한 것이다. 이 또한 재목하나라도 아끼려는 고인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참당암 지장보살 좌상지장전 안 석조지장보살좌상, 광배를 제외하고 온전히 남아있는 불상으로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둥병 낫게 해준다는 영험담 전해져

 

명부전 뒷편의 지장전은 한때 약사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석조 지장보살이 문둥병을 낫게 해준다는 소문이 나 약사보살로 불린 듯 하다. 하지만 지금은 선운사 삼장지장신앙의 인장 지장보살로 지장신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지장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아주 작은 규모의 건물이다. 예전에 비해 건물은 축소되었지만 이전 건물에 있던 기둥을 그대로 사용하고 칸 수는 그대로 유지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참당암의 건축적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대웅전은 고려와 조선이라는 시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의 부재라도 버리지 않으려는 검약 정신의 결과로 오히려 시간을 축적하고 역사를 담는 고차원적인 건물이 되었다.

 

명부전과 응진전 역시 재정적 결핍이라는 장애요인을 전혀 개의치 않고 연립 불전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통쾌하고 극복하고 있다.

 

부족한 자재를 서로 잇대어 건축한 선운사의 만세루와 함께 참당암의 거칠지만 자유로운 건축들은 물질 만능시대에 물들어 사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주변 둘러볼만한 곳

 

 

▲선운사

선운산도립공원 내. 백제 위덕왕이 창건한 선운사는 보물 290호인 대웅전과 보물 279호인 금동보살좌상 등 19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미당문학관

미당 시 문학관은 2001년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시인의 고향이자 영면지인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읍 선운리 마을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미당의 생가(生家)와 묘역이 부근에 있다.

파이프와 지팡이, 편지, 자필 시 등 미당의 유품 5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2개 전시동, 서재 재현실, 세미나실, 다용도실, 전망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창읍성

고창읍에는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축성된 고창읍성이 있다. 일명 모양성으로 불리는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하여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어진 읍성이고 그 안에는 동헌, 객사 등 14동의 관아건물이 재현되어 당시 행정현장을 살펴볼 수 있다.

 

▲문수사

백제 의자왕 3년(643)에 신라의 자장율사가 지은 사찰. 청량산 중턱에 있으며, 천연기념물 단풍나무숲으로 가을에 더욱 아름답다.

 

▲고인돌 유적지

고창 고인돌유적지는 학계에 보고된 한반도 고인돌 3만6000기 중 2000여기를 보유한 국내 최대 밀집지역으로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 447기를 자연 상태 그대로 감상할 수 있어 세계 제1의 고인돌 명소로 유명하다.

 

〈숙박〉

선운사 앞에 민박과 펜션이 많이 있다. 단체 여행이라면 선운산유스호스텔(063)561-3333, 선운산관광호텔(063)561-3377을 이용해도 좋다.

 

〈맛집〉

선운사가 있는 고창은 풍천장어와 복분자가 유명하다. 그래서 입구에는 장어식당이 많다. 식당마다 원조 간판을 달고 있어 헛갈리지만 삼거리의 풍천만가(063)563-3420와 신덕식당(063)561-1533의 맛이 뛰어나 찾는 이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