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 탑사, 벚꽃 절경에 흠뻑 취한 ‘신비의 돌탑’

마이산 탑사, 벚꽃 절경에 흠뻑 취한 ‘신비의 돌탑’

2015년 06월 13일 by jeungam

    마이산 탑사, 벚꽃 절경에 흠뻑 취한 ‘신비의 돌탑’ 목차

봄꽃이 아름다운 사찰④ 진안 마이산 탑사

이갑용 처사, 1885년부터 30여간 쌓아

현존 80여기 돌탑… 강풍에도 끄떡 없어

다섯개 탑 호위받는 천지탑 한쌍 ‘인기’

틈새없이 짜맞춘 정교함에 탄성 연발

 

 

마이산 탑사 대웅전마이산 탑사는 신비의 돌탑으로 유명하다. 현재 경내에는 80여기의 돌탑들이 남아있다. 빨간 동백꽃 사이로 보이는 대웅전이 돌탑과 함께 위용을 자랑한다.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르다.

봄에는 안갯속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대배 같다 해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 사이에서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해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처럼 보인다 해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文筆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이산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남쪽 산기슭에 있는 마이산 탑사다. 이곳에는 독특한 돌탑이 있다. 이갑용 처사라는 사람이 1885년부터 30여년간 쌓았다고 하는 돌탑인데 비바람에도 100여년간 무너지지 않아 신비감을 준다.

 

현재 80여기 돌탑이 있는데 태풍이 강타했을 때 웬만한 나무는 뿌리째 뽑혀도 이 돌탑들은 조금씩 흔들렸을 뿐 쓰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2012년에는 전국을 강타한 강풍에도 끄떡없는 돌탑의 신비함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불공인파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마이산탑사 천지탑탑사 대웅전 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천지탑 한쌍

 

  당시 주말마다 8,000여명이 탑사를 찾은 것을 비롯해 평일에도 평균 500여명이 방문할 정도였다.

 

 이는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영향으로 마이산 주변 수백 그루의 나무가 쓰러졌지만 탑사의 돌탑들이 무사하면서 그 신비함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돌탑의 신비함이 알려지면서 하루 평균 방문객이 100여명에 불과했던 탑사에 전국의 수험생 가족과 환자, 사업가 등 방문객이 줄을 이었던 것이다.

 

 특히 매일 야간불공에 들어간 열성파가 30여명에 이르고 아예 자리를 깔고 밤새워 합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관계자는 귀뜸한다.

 

그런 영험함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돌탑 앞에 서면 이곳이 인간세계인가, 불국토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외경심이 든다. 경내에 들어서면 온통 돌 천지다. 크기도 높이도 다른 돌탑들이 마이산 아래 탑사 골짜기를 빼곡하게 채웠다. 마치 야외 돌탑박물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런 높은 탑을 어떻게 쌓아 올렸을까?’ 답을 들어도 설명을 들어도 알 길이 없다.

돌탑을 쌓은 주인공인 이갑용 처사는 효령대군 16대손으로 부친이 세상을 뜨자 16세 나이에 3년 시묘살이를 마치고 전국 명산을 두루 다니며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원주의 치악산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다 꿈속에 두 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여 그 후 산들을 돌아다니다 마이산을 찾게 되었다. 꿈에서 본 그곳이었다.



 

마이산탑사 돌탑법당 앞 우뚝 솟은 돌탑이 이색적이다.

 

 

 이갑용 처사는 자리를 잡고 천지탑과 일월탑, 월궁탑 등을 쌓으며 마이산 탑사를 완공했다.

 낮에는 돌을 모으고 밤에 탑을 쌓았다고 하는데, 천지탑은 축지법을 이용해 탑을 쌓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외줄탑과 원뿔탑 등 생김새도, 쌓아올린 양식도 제각각. 탑사로 들어서는 순간 터진 탄성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이지만 놀라움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탑사 대웅전 뒤편에 있는 천지탑 한 쌍. 미얀마의 거대 스투파를 연상케 한다.

아무리 거센 강풍이 불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니 그 모습은 실제 보고도 믿기 어려운 경이로운 자태다. 절로 두 손이 모인다.

 

오행을 뜻하는 다섯 개 탑의 호위까지 받는 위엄이 있다. 제일 위쪽에서 아래의 모든 탑들을 호령한다. 다듬지 않은 돌을 하나하나 원형으로 쌓아올라가다가 중간에 합쳐졌다.

틈새하나 없이 짜맞춰 정교하고 완벽하다. 보는 이들은 저마다 탄성을 질러댄다. 반면 대웅전 앞쪽의 돌탑들은 외줄로 하늘을 찌를 듯 서있다. 자연석을 생긴 모양 그대로 차곡차곡 쌓아올렸을 뿐. 언뜻 보면 한줄기 바람에도 금방 무너져내릴 것만 같다. 하지만 100여년동안 그 어떤 강풍에도 견뎌왔다.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 신비의 돌탑이다.

돌탑을 쌓으면서 수많은 신비와 전설, 역사를 담았기 때문이리라. 자연이 만든 걸작이 마이산이라면 이 돌탑들은 인간이 만든 걸작품이다. 탑사를 한바퀴 돌고 나면 놀라움은 의문으로 바뀐다.

 

누가 왜 이 많은 돌탑들을 세웠을까. 이 탑들은 나라를 위해 마이산으로 모인 기운을 다스리려고 탑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탑사 왼쪽의 암마이봉 절벽도 신비감을 더해주는 볼거리다. 폭격을 맞은 듯 움푹 팬 자국들이 선명하다. 이색적이다. 4월중순 아직은 꽃잎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능소화 한 그루가 이 절벽에 붙어산다. 능소화가 피는 7월~8월이면 절경을 이룬다고 한다. 모진 비바람에도 꺾이지않는 능소화는 돌탑의 신비를 그대로 닮았다.

 

마이산 돌탑은 참 풀기 어려운 숙제와 같았다. 그래서 탑을 둘러싼 이견도 많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갑룡 처사가 혼자서 돌탑을 쌓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했다는 것은 이 처사의 장손 이왕선(혜명스님) 씨도 인정하는 바다. 최규영 진안향토사연구소장(前 진안문화원장)은 “사방 80cm의 돌이라면 1,200kg 즉, 1톤이 넘는 무게에 해당하고 이런 무게라면 지렛대로 굴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한 두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들어 올릴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마이산 탑사 전경입구에서 본 마이산 탑사 경내 전경.

 

현재 탑사에는 천지탑, 오방탑, 33신장군탑, 중앙탑, 일광탑, 월광탑, 약사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천지탑(天地塔)이 눈에 띈다. 높이가 13.5m에 이르고 동북좌 남서향으로 축조됐다. 천지탑은 음과 양을 뜻하고 보는 쪽에서 오른쪽은 하늘이며 왼쪽은 땅을 뜻한다고 한다.

 

조성시기에 대해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기법상으로 봐도 돌담식 허튼막돌식 쌓기로 축조하였고 정교한 축조법과 시멘트보강 등으로 보아 1900년대 이후로 보인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마이산탑사는 매년 4월 15일 경이면 항상 장관을 이룬다.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 터널을 이뤘다. 다. 4월 17일인 평일에 방문했는데도 마이산 탑사는 상춘을 즐기려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특히 신비의 돌탑 주변에는 사진에 추억을 담아가려는 이들로 붐빈다.

 

 이갑용 처사 동상  마이산 탑사의 돌탑을 쌓은 이갑용 처사 동상

 

마이산탑사는 현재 태고종 소속의 진성 스님이 주지를 맡고 있다.

 진성 스님은 지역에 소외된 이들은 물론 해외에까지 자비행을 펼치는데 진력하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해외 구호활동을 하러 떠나 부재중이었다. 출국전 전화인터뷰를 통해 진성 스님은 마이산탑사에 국내외 돌탑의 역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탑 박물관 건립을 발원하고 있다고 했다.

 

마이산탑사는 국내는 물론 세계인들에게도 충분한 감동을 주는 자랑스런 성보문화재임에 틀림이 없었다. 진안 마이산탑사=김주일 기자 | kimji4217@hyunbul.com

 

마이산 벚꽃매년 4월 중순이면 탑사 입구는 벚꽃터널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