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를 살린 고 차일혁 경무관 공덕비 제막식

화엄사를 살린 고 차일혁 경무관 공덕비 제막식

2013년 08월 28일 by jeungam

    화엄사를 살린 고 차일혁 경무관 공덕비 제막식 목차

 

화엄사를 살린 고 차일혁 경무관 공덕비 제막식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 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

천년고찰 지리산 화엄사를 구한 차일혁 경무관의 공덕을 기리는 공덕비가 화엄사에 세워졌다.

 

故 차일혁 경무관(1920~1958)은 지난 1951년 6.25전쟁 당시 전북경찰국 제18전투대대장으로 임명돼 토벌작전이 진행된 지리산 일대의 화엄사, 천은사, 쌍계사, 금산사, 백양사, 선운사와 덕유산 일대의 사찰 소각 명령을 받았으나 기지를 발휘하여 사찰을 전화(戰火)에서 구한 인물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8년 문화재호국인물로 선정을 했으며, 국가보훈처는 호국의 인물로 선정했으며, 조계종은 초대종정 효봉스님이 1958년에 감사장을 수여했다.

지난 8월 21일 화엄사 박물관 입구에서 진행된 이날 공덕비 제막식에는 화엄사 주지 영관스님을 비롯해 스님들과 차 경무관의 후손인 차길진 법사, 전석종 전남지방경찰청장, 서기동 구례군수 등 300여명이 사부대중이 동참한 가운데 차 경무관은 문화재를 보호하려는 뜻깊은 공덕을 기렸다.

 

영관스님은 인사말에서 “한국전쟁같은 한국 현대사의 우여곡절은 동시대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준 것은 물론 오천년을 이어온 민족문화유산에도 돌이킬 수 없는 많은 손실을 가져왔다”며, “차일혁 경무관과 같이 문화재의 가치를 이해한 선각자가 있어 더 많은 피해를 줄이 있었으니, 많은 사찰들이 고인의 지혜로운 결단으로 온전하게 보전될 있었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차일혁 경무관의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소중한 뜻을 기리는 이 공덕비는 화엄사의 천년역사와 더불어 민족문화유산보존에 대한 후손들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만대에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차길진 법사는 인사말을 통해 “선친의 공덕비 제막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문화를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 문화유산을 지킨 사람이 선친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공덕비를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이름 없는 용사들과 숨인 은인들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이날 차길진 씨는 경봉스님 친필 ‘화엄’ 글씨와 차일혁 경무관 관련 자료 5점을 화엄사 박물관에 기증했고, 화엄사는 이에 감사장을 수여했다.

 

이날 제막된 공덕비는 높이 2970mm, 넓이 3000mm의 2단 구조의 화강암과 대리석 조각으로 하단에는 화엄사와 차 경무관의 부조가 조각되었고, 상단에는 시인 고은 씨가 지은 서문이 들어가 있다. 배면에는 차 경무관의 연보와 어록이 새겨져 있다.

한편 차일혁 경무관은 1920년 전북 김제 출신으로 16세에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중국중앙군관학교를 졸업했다. 21세에 광복군으로 전투에 참가했으며, 광복의 해인 1945년에 악질 고등계 형사 사이가, 쓰보이를 저격하는 등 일제 잔당 청산에 앞장섰다.

 

한국전쟁이 진행중이던 1951년 전북경찰국 제18전투대대장으로 참여해 수많은 사찰들을 소각하라는 명을 받았지만 기지를 발휘에 문화유산을 지켜냈다.

 

1953년 9월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 사살하고 시신을 거두어 섬진강에서 장례를 지냈다. 그 후 태극무공훈장 서훈을 거부했다. 1958년 조계종 초대종정 효봉스님으로부터 감사장을 수여받고, 8월 9일 공주에서 순직했다.

 

사후에 차 경무관의 뜻이 더욱 알려져, 1998년 화엄사 경내에 공적비가 건립되었고, 2008년 문화재호국인물로 선정. 10월 경찰공무원 최초로 보관문화훈장 추서. 2012년 국가보훈처에서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 2013년 전쟁기념사업회에서 호국의 인물로 선정되었다.<양행선 현대불교신문 광주전남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