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모악산 금산사 미륵전 (국보62호)

김제 모악산 금산사 미륵전 (국보62호)

2008년 05월 25일 by jeungam

    김제 모악산 금산사 미륵전 (국보62호) 목차


금산사 미륵전


김제 금산사 미륵전 (국보62호)

보제루를 지나 가람의 중심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국보 제62호인 웅장한 규모의 미륵전이 보인다.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그분의 불국토인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라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을 사찰 속에 응축시킨 것이 미륵전이요, 먼 미래의 새로운 부처님 세계에서 함께 성불하자는 것을 다짐하는 참회와 발원의 장소이다.

미륵전은 신라 경덕왕 21년(762)부터 혜공왕 2년(766) 사이에 진표율사가 가람을 중창하면서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았던 체험 그대로를 가람에 적용하여 세웠다. 안에는 미륵장륙상을 본존으로 모셨으며 남쪽 벽에 미륵과 지장보살에게서 계를 받는 광경을 벽화로 조성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지금의 모습은 인조 13년(1635)에 수문대사가 재건하였다.

미륵전은 용화전, 산호전(山呼殿), 장륙전 등의 여러 가지 이름을 지녔다. 지금도 특이하게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등의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가 미륵불의 세계를 나타낸다.

이러한 다층의 사찰 건축으로서 미륵전은 법주사의 팔상전과 함께 한국 건축사의 위대한 업적으로 꼽힌다. 일찍이 삼국시대로부터 축적된 기술적, 미학적 아름다움은 국토 곳곳을 불국토의 장엄으로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미륵전의 내벽과 외벽에는 사이 사이에 수많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보살과 신장 그리고 수도하는 모습 등 다양한 벽화는 건물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한편 오른쪽 벽에는 1890년(고종 27)에 조성한 제석천룡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용준(聳俊), 정선(定善), 오종(午從) 등의 금어(金魚)가 그렸는데, 적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며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미륵불 본존은 높이가 11.82m이고 삼존불 중의 협시는 8.79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이다.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가 미륵전을 조성할 당시에는 3년간에 걸쳐 완성한 미륵장륙상 한 분만이 모셔졌었다. 그 뒤 조선시대에 수문대사가 다시 복원 조성하면서 소조 삼존불로 봉안했는데, 1934년에 실화로 일부가 소실되었다. 4년만인 1938년 우리나라 근대 조각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김복진(金復鎭, 1901~1940)이 석고에 도금한 불상을 다시 조성해 오늘날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미륵본존은 거대한 입상이지만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룬 모습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 불단 아래의 거대한 청동대좌는 정확한 조성시기를 알 수 없지만 잦은 소실과 복원의 과정에서도 오랜 세월동안 변함없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 여러 불상을 받들고 있는 역사의 대변자가 되는 셈이다.

본존불은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고, 왼손 역시 손가락을 조금 오므렸지만 밖을 보이게 한 시무외인이다. 대개 미륵불은 다른 불상과 구별되는 별개의 특징을 지니지 않는다.

본존불 양 옆의 협시보살은 왼쪽이 법화림(法花林) 보살이고, 오른쪽이 대묘상(大妙相) 보살이다. 협시보살 좌우에는 언제 봉안하였는지 모르는 또 다른 것이 2구가 있다. 본존의 협시보다 약간 작지만 역시 금을 입힌 소조상이다. 
 <글 금산사 사진 조동제 현대불교신문 전북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