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라이라마, 티베트 민중봉기 50주년 성명 발표 목차
중도노선 지속, 중국에 합법적인 자치권 요구
“우리는 미래를 멀리 내다보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티베트인들은 중국의 틀 안에서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합법적인 자치권을 원한다.”
올해는 3ㆍ10 티베트 평화 민중봉기의 50주년이자,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를 떠나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수립한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이에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3월 10일 민중봉기 50주년을 맞아 중국의 지속적인 대화와 티베트 내의 평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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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는 성명서를 통해 중국에 대한 ‘중도노선’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며 △중국 공산당의 티베트 침략 역사와 망명정부 수립의 배경 △전 세계 망명 티베트인들이 처한 현실 △티베트인에 대한 중국정부의 폭력행사 중단 △ 중도노선 강조 및 중국정부의 ‘티베트 자치를 위한 양해각서’ 이행 촉구 △티베트와 중국간의 상생과 평화를 역설했다.
그는 “모든 국민들이 단일 자치 행정권 아래 편입되는 것을 원하는 티베트인들의 열망은 민족구역자치제 원칙의 목적과 일치하고, 티베트와 중국 국민들의 기본 요구도 충족시킨다”고 강조했다. 이어 “티베트를 지배하기 시작한 이후 중국 정부는 티베트와 티베트 국민에 대해 왜곡된 주장을 펼쳐왔다”며 “그 결과 일부 중국인들 사이에서 티베트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그런 선전에 휘둘리지 않기를 중국인들에게 다시 한번 촉구하며 티베트인에 대해 제대로 배우도록 노력해 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1949년부터 티베트에 대한 침공을 시작해, 1951년 ‘티베트 평화 해방안 17개조항’을 강제 체결한 후 현재까지 티베트를 지배하고 있다. 이후 중국은 티베트인들에 대한 종교, 문화, 언어 등에 대한 고압적인 정책을 유지해 왔으며, 이에 티베트 인들이 1959년 3월 10일 평화시위를 봉기하게 된다.
전세계 곳곳에 망명 중인 티베트 인들과 200여개에 달하는 티베트 관련 단체들이 50주년을 기념해 각종 평화시위를 펼친다. 국내에서도 티베트하우스코리아, 록빠(RTFC), 티베트의 친구들 등 20여개 단체가 모여 티베트의 평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중구 대사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펼칠 예정이다. 이어 평화 촛불 문화제도 저녁 7시부터 종로 보신각에서 열린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제 14대 달라이 라마
티베트 민중봉기 50주년 성명서
오늘은 중국 정부의 티베트 억압에 대항해 티베트 국민들이 평화 봉기를 일으킨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작년 3월에는 대대적인 평화 시위가 티베트 전역에서 일어났다. 대부분의 시위자들은 독립된 티베트에서 살아보지 못한 1959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였다. 티베트의 대의를 위해 싸우는 모든 세대들과 그들의 강한 신념이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그들은 티베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국제 사회 일원들에게 많은 자극을 주게 될 것이다. 작년에 있었던 유혈시위 기간 동안 세상을 떠난 분들을 비롯해 고문을 당하고 크나큰 고초를 겪은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 드린다.
1949년부터 중국의 인민해방군은 티베트의 동북부(암도)와 동부(캄)를 침략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 해인 1950년까지 5천 명 이상의 티베트 병사가 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1951년에 ‘티베트 평화 해방안 17개 조항’을 강제로 체결시켰다. 이후 티베트는 중국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베트 평화 해방안 17개 조항’은 티베트의 독특한 종교, 문화, 전통 가치를 분명하게 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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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부터 1955년까지 본인은 마오쩌둥 주석이 이끄는 중국의 공산당, 정부, 군부 최고 지도자들을 만났다. 티베트의 종교와 문화 유산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경제적 발전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논의할 때 마오쩌둥 주석과 다른 모든 지도자들은 조항에 명기된 바와 같이 자치구 설치를 위한 준비 위원회 설립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했다. 그러나 1956년 이후 극좌파 정책에 의해 상황이 악화됐다. 최고 지도자들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민주 개혁”이란 명분 아래 강요된 중국의 정책에 반대한 티베트의 캄과 암도 지역은 혼돈 상태에 빠졌고 파괴가 자행되었다. 중부 티베트에서는 중국 관리들이 강제적이고도 고의적인 방법으로 ‘티베트 평화 해방안 17개 조항’의 내용을 위반했고, 그들의 고압적인 정책은 나날이 정도가 심해져 갔다. 이런 절박한 상황 때문에 1959년 3월 10일 티베트 국민들이 평화적인 봉기를 일으켰다. 이에 중국 당국은 전례가 없는 무력사용으로 대응했고, 수 개월에 걸쳐 모두 수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살해되고 체포되었으며 투옥되었다. 그 결과 본인은 몇 명의 칼론(각료)을 포함한 소수의 티베트 정부 관리들과 함께 인도에서 망명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거의 10만 명에 이르는 티베트인들이 인도, 네팔, 부탄으로 망명했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
티베트를 지배하게 된 중국 공산당 정부는 “민주 개혁,” 계급 투쟁, 코뮌, 문화 혁명, 계엄령 실시, 애국주의자 재교육 등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정책을 계속해서 실시했다. 이는 티베트 국민들에게 깊은 고통을 주었는데 말 그대로 지옥과 같은 경험이었다. 이런 정책들이 실시되자마자 무수한 티베트인들이 죽음을 당했다. 불법(佛法) 계승은 중단되었다. 수도원과 사찰 등 수천 개에 달하는 종교, 문화 센터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역사적인 건축물과 유물들도 파괴되었다. 천연자원은 무차별적으로 약탈되었다. 오늘 날 티베트의 환경은 오염됐고, 대규모 벌목이 진행되고 있으며, 야크와 티베트 영양 같은 야생 동물들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50년 동안 티베트의 국민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국토는 파괴되었다. 오늘날에도 티베트 내의 티베트인들은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고 있고 중국 정부는 티베트인들을 계속해서 감시하고 있다. 티베트인들이 자신들의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티베트의 종교, 문화, 언어, 정체성이 오늘날 사라질 위기 마저 처해 있다. 티베트 국민들은 죽음을 당해도 마땅한 죄인 취급을 받고 있다. 이런 티베트 국민들의 비극은 고(故) 판첸 린포체가 1962년 중국 정부에게 제출한 7만 자에 달하는 탄원서에 잘 나타나 있다. 1989년, 사망하기 직전의 판첸 린포체는 시가체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 비극에 대해 다시 언급했다. 판첸 린포체는 중국 정부의 지배로 인해 티베트가 잃은 것이 얻은 것보다 훨씬 많다고 말했다. 티베트 상황에 대해 염려하면서도 편파적이지 않은 많은 티베트인들도 티베트 국민들의 고초에 대해 얘기했다. 1980년에 티베트의 라싸를 방문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후야오방도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티베트인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티베트에 발전을 가져온 것처럼 보이는 도로, 공항, 철도 등과 같은 기반 시설의 확충은 티베트의 환경과 생활 양식을 짓밟고 티베트를 중국화 하려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티베트 망명인들은 기후와 언어의 현격한 차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생활고에도 시달리고 있지만, 스스로 다시 일어서는데 성공했다. 망명 티베트인들이 거주 중인 인도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의 크나큰 배려 덕분에 티베트인들은 두려움 없이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었다. 생계를 꾸리고 종교와 문화를 지킬 수 있었다. 어린이들에게는 전통적인 교육과 현대적인 교육 두가지 모두 제공할 수 있었고 티베트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일 수 있었다. 다른 긍정적인 결과도 있었다. 자비를 강조하는 티베트 불교에 대한 이해가 점점 커짐에 따라 세계 곳곳에 끼치는 영향력도 커졌다.
망명 생활이 시작되자마자 본인은 티베트 망명 사회 내에서 민주화를 촉진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고 1960년에는 티베트 망명 의회를 설립했다. 그 이후 우리는 민주주의로 한 발 한 발 다가갔고, 현재 티베트 망명 정부는 완벽한 민주주의 기구로써 헌법과 입법부도 갖추고 있다.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다.
2001년부터 우리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선거를 통해 지도부를 선출하기 시작했다. 현재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된 칼론 트리파(총리)는 두 번째 임기에 들어섰다. 그 결과 본인의 일상 행정 업무는 줄어들었고 현재 본인은 거의 은퇴에 가까워 지고 있다. 그러나 티베트의 대의를 위해 일하는 것은 모든 티베트인들의 의무이고 본인은 살아있는 한 계속 이 의무를 이행할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본인의 의무는 인간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본인은 그것이 개인, 가족, 공동체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한 종교인으로서 본인의 두 번째 의무는 종교간의 화합을 촉진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의무는 물론 티베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본인이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티베트 안팎에서 티베트인들이 본인에게 보내주는 신뢰 때문이다. 이상이 늘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본인의 3대 의무이다.
망명 중인 티베트인들의 안위를 보살피는 것 이외에도 티베트 망명 정부의 주요 임무는 티베트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다. 우리는 1974년부터 티베트와 중국 양측 모두에게 이로운 중도노선을 걸어왔기 때문에 1979년에 덩샤오핑이 회담을 제안했을 때 모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여러 차례의 회담이 열렸고 진상조사를 위한 대표단이 급파됐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했고, 1993년에는 양국 간의 공식 접촉이 완전히 끊어졌다.
1996-97년에는 티베트 국민들이 직접 티베트 망명 정부의 투쟁 노선을 결정할 수 있도록 망명 중인 티베트인들과 티베트 지역의 티베트인들에게 가능한 한 많이 의견을 구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중도노선을 계속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2002년에 중국 정부와 대화가 재개된 후 우리는 공식적인 단일 대화채널을 통해 협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8차에 걸쳐 열린 회담에 참가했다. 그리고 우리는 ‘티베트의 고도 자치를 위한 양해각서’-어떤 방식으로 중국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티베트 국민을 위한 진정한 자치권이 확보될 수 있는지를 정리한- 체결을 제안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가 고대부터 중국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일 뿐만 아니라 상식을 벗어난 주장이다. 아무도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미래를 멀리 내다보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티베트인들은 중국의 틀 안에서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합법적인 자치권을 원한다. 이런 티베트인들의 열망을 만족시켜줌으로써 중국도 안정과 화합을 이룰 수 있다. 우리의 열망은 역사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오늘 날 세계에는 영토의 모양이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유지된 나라는 중국을 포함해 단 하나도 없다.
모든 국민들이 단일 자치 행정권 아래 편입되는 것을 원하는 티베트인들의 열망은 민족구역자치제 원칙의 목적과 일치하고, 티베트와 중국 국민들의 기본 요구도 충족시킨다. 중국 헌법 및 다른 관련법과 관련 규정도 이 열망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으며, 중국 정부의 여러 지도자들도 티베트인들의 이런 열망을 수용한 바가 있다. ‘티베트 평화 해방안 17개 조항’을 체결할 때 저우언라이 중국 공산당 총리는 티베트인들의 요구는 정당하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1956년에 ‘티베트 자치구’를 위한 준비 위원회를 설립했을 때 천이 부총리는 지도를 가리키며 티베트 자치구가 다른 성에 편입된 티베트 지역까지 모두 포함하고 라싸가 수도가 된다면 티베트의 발전에는 물론 티베트와 중국 국민들이 우정을 쌓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판첸 린포체 및 다수의 티베트 지도자들과 학자들도 동의했던 바이다. ‘티베트의 고도 자치를 위한 양해각서’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중국 지도자들은 그 이유를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모든 티베트인들을 위한 민족구역자치제 원칙을 – 중국 헌법에 명시된 그대로 - 이행하기 위해 우리가 성실하게 준비한 내용에 중국 정부가 적절히 반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망스럽다.
중국과 티베트 간의 회담이 전혀 성과를 올리지 못한 것은 물론, 작년 3월에 티베트 전역에서 시작된 시위를 중국 정부는 가혹하게 진압했다. 그 결과 2008년 11월에는 티베트 망명 정부가 미래에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여론을 구하기 위해 ‘티베트 망명정부 특별총회''를 개최했다. 티베트 내의 티베트인들로부터도 최대한 많은 의견을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티베트인들 다수는 중도노선을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자신 있게 중도노선을 표방할 수 있게 됐고, 모든 티베트인들을 위한 민족구역자치제를 계속해서 추구할 수 있게 됐다.
태곳적부터 티베트와 중국 국민들은 서로 이웃이었다. 미래에도 우리는 같이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 좋게 공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티베트를 지배하기 시작한 이후 중국 정부는 티베트와 티베트 국민에 대해 왜곡된 주장을 펼쳐왔다. 그래서 티베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중국 국민은 거의 없다. 사실 제대로 알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좌파 중국 지도자들은 작년 3월 이후 티베트와 중국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서로 악감정을 품도록 유도하는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결과 일부 중국 형제 자매들 사이에 티베트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그런 선전에 휘둘리지 않기를 중국 형제 자매들에게 다시 한 번 촉구한다. 대신 티베트에 대해 제대로 배우도록 노력해 주기 바란다. 그래야 양국 국민들이 분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티베트인들도 중국 국민들과 우정을 쌓도록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의 망명 생활을 뒤돌아보면, 현재 우리 티베트 망명인들이 살고 있는 국가의 정부와 국민들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 국가들의 법을 준수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국가들의 일부가 됐다고 생각한다. 또, 티베트의 대의에 동참하고 티베트의 종교와 문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선견지명과 구체적인 전략을 갖춰야 한다.
본인은 늘 최선을 기대하고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티베트 사태가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의 투쟁이 오래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을 집중적으로 교육시키고, 다양한 방면에서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또 환경 보호와 건강 관리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하고, 티베트 국민들로부터 비폭력 투쟁에 대해 공감을 더 얻어내야 한다.
이번 기회를 빌어 지난 50년 동안 그 어떤 문제나 장애에 부딪혀도 티베트 망명인들에게 늘 변함 없는 지지와 도움을 보내준 인도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물론 중앙, 지방 정부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들의 친절과 배려는 무한함 그 자체였다. 국제 사회의 지도자들, 세계 각국 정부, 시민들과 티베트 후원 단체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현대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