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뇌묵당 처영대사 역사문화기념관 상량

금산사, 뇌묵당 처영대사 역사문화기념관 상량

2013년 06월 09일 by jeungam

    금산사, 뇌묵당 처영대사 역사문화기념관 상량 목차

금산사, 뇌묵당 처영대사 역사문화기념관 상량

금산사, 뇌묵당 처영대사 역사문화기념관 상량

호국불교정신 재조명, 역사문화교육의 장으로 활용

 

임진왜란당시 승병을 이끌고 참전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끈 뇌묵당 처영대사의 호국불교정신을 기리는 ‘뇌묵당 처영대사 역사문화기념관’ 상량식이 6월 2일 김제 금산사에서 봉행됐다.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 상량문 봉독, 법어, 격려사와 축사에 이어 석가모니불 정근과 함께 진행된 상량식에는 금산사 조실 월주스님, 주지 원행스님, 남고사 원혜스님을 비롯한 17교구 본말사 대중스님들과 김백호 전북불교신도회장, 김승수 전북정무부지사, 이석봉 김제부시장, 최규성 국회의원을 비롯한 사부대중 500여 명이 참석해 성스런 역사문화 기념관의 상량을 축하했다.

 

원행스님은 “금산사는 대사구, 봉천원구, 광교원구의 3원의 가람구조를 가졌으나 조선조 정유재란때 왜군에 의해 소실되었다” 며 “정조대왕으로 부터 서산, 사명대사와 함께 구국삼화상으로 추존 된 처영대사의 배례각이 없어 안타까워 하던 중 이번에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건립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금산사, 뇌묵당 처영대사 역사문화기념관 상량

월주스님은 법어를 통해 “뇌묵당 처영대사의 호국 불교정신을 이어받아 도덕적으로 성숙하고 사회적으로 통합해서 올바른 가치관과 진리관으로 정신문화 창달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상량글은 월주스님이 썼고 상량문은 원행스님이 지었다.

이날 상량을 마친 뇌묵당 처영대사 역사문화기념관은 661㎡(198평) 규모로 전면 11칸 측면 5칸 일출목 다포(구량식)형식으로 건립된다.

 

 

금산사, 뇌묵당 처영대사 역사문화기념관 상량

금산사측은 역사문화기념관이 완공되고 나면 서산대사, 사명대사, 처영대사의 구국삼화상의 호국정신을 재조명하고 역사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조선조 임진왜란당시 청허당 휴정대사, 사명당 유정대사와 함께 나라를 구한 구국삼화상(救國三和尙)으로 추앙받고 있는 뇌묵당 처영대사는 20살에 금산에서 출가해 임진왜란 당시인 1592(선조 25)년 승병1천여명을 이끌고 권율장군과 함께 모악산 배고개(이치)전투에 참전해 승리했다.

 

행주산성에서는 권율장군의 3천여명과 함께 승병 700여명이 왜군 3만명을 격퇴한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또 1593년 2월에는 수원 독왕산성 전투에서 왜적 우키타 군의 공격을 방어했다.

 

전쟁이 끝난후 조정에서는 절충장군의 직위를 하사하고 의병부장 가선대부중추부사 뇌묵당 대선사 직품을 추증했다.

1794(정조 18)년에는 왕명으로 휴정, 유정과 함께 뇌묵 처영대사의 진영을 해남 대흥사, 밀양 표충사, 묘향사 수충사에 봉안하고 구국삼화상으로 추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