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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순례단 임진각 시국선언문 전문
우리 오체투지 순례단은 이 세상의 가장 느리고도 낮은 자세로 참으로 머나먼 길을 기어서 왔다. 지난해 9월4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해 계룡산과 서울을 지나 상악단인 묘향산으로 가는 참회와 성찰의 길 위에서 124일 동안 1,000리 길을 기고 또 기어서 지금 여기 임진각까지 왔다.
뙤약볕이 내리쬐거나 비가 오거나 아스팔트 위에 날마다 천 번 이상 온몸을 던지는 오체투지 순례는 차마 필설로 다 하지 못할 고통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육체적 고통은 차라리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 순례단은 생명과 평화는 고사하고 너무나도 처참한 한반도의 현실을 목도하고 말았다. 독선과 오만으로 점철된 소통 부재의 시대, 역주행의 한반도를 가로지르며 ‘용산 참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순명(殉名)’ 등 참으로 천인공노할만한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날마다 온몸에서 쏟아지는 피땀과 피눈물보다 더한 절망과 슬픔과 분노의 정신적 고통에 몸서리를 쳐야만 했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왔는지’ 반문하고 또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잘못도 잘못이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막가파식 소통 불능의 정치를 아무런 반성도 없이 자행하는 이명박 정권의 치명적인 업보가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 순례단은 먼저 안으로는 절절한 참회와 성찰의 자세로, 그리고 바깥으로는 위기의 한반도를 생명평화의 땅으로 일구고자 하는 간절한 기도의 자세로 이 땅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기도순례를 진행했다. 선조들의 가르침 따라 국가적인 재난이나 민족적인 재앙을 막기 위해 전 국민의 뜻을 모아 하악단인 지리산 노고단과 중악단인 계룡산 신원사, 그리고 상악단인 묘향산 보현사에서 하늘에 생명평화를 고하는 천제를 지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처음 오체투지를 시작할 당시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욱 거세되고 세상사는 더더욱 험악해졌다. 마침내 온 국민은 도탄에 빠지고 말았으며, 남북 대결구도의 한반도는 다시 대립과 투쟁과 전쟁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30년 전의 5·18 광주에서처럼 자행된 용산 참사는 아직까지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생존권을 부르짖던 아버지는 공권력에 의해 폭도의 이름으로 죽임을 당하고 그 아들은 아버지를 죽인 ‘방화 살인범’ 이 되어 감옥에 들어가 있으며, 유가족들의 울부짖음은 끝끝내 외면당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장이 끝나자마자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대한문 앞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짓밟는 행태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온 국민의 눈과 귀를 틀어막으려는 시대착오적인 ‘미디어 악법’ 등과 “국민이 원치 않으면 하지 않겠다”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명패만 바꾼 채 슬그머니 예산을 증액시켜 ‘5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강행하려는 등 후안무치한 짓을 서두르고 있다.
또한 갈수록 종교 갈등을 부추기는가 하면, 백년지대계의 교육문제부터 남북문제까지 우리 사회의 중심문제들이 하나같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극소수 특권층에게 온갖 혜택을 집중시키는 대신 모든 책임과 고통을 대다수 국민들에게 전가시킴으로써 공생공존이라는 생명평화 원칙을 외면하는 바로 이것이야말로 이명박 정부의 극명한 정체임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남북문제는 어느 한 정권만의 일이 아니라 신뢰와 연속성의 중차대한 민족적 사명이다. 지금처럼 대화조차 없는 일촉즉발의 민족 대결 구도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전체의 운명이 걸려있는 일이니 민족 공동번영의 길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들도 준엄한 역사적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 직면하여 사회 각계각층에서 온 국민과 한반도의 명운을 걸고 긴급히 취해야 할 일들이 각계에서 쏟아지고 있다. 시급하게는 한반도 긴장상태의 완화를 위한 실질적인 대북 정책의 전환, 불행한 사회적 죽음에 대한 책임자 처벌과 대통령의 공개 사과, 내각 총사퇴를 바탕으로 국정 운영의 근본적 쇄신,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미디어 악법과 본질적으로 한반도 운하 사업인 5대강 하천정비 사업의 포기 등이다.
그러나 오체투지 순례단은 지금까지의 순례길에서 시대의 막중한 위기 상황을 내밀하게 성찰한 결과, 더 이상의 혼란과 분열은 소중한 사회적 역량의 낭비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또한 단발마적인 임기응변식 조치들로는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수 없으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또한 현재의 상황에서조차 권력 스스로가 위기를 정확히 직시하지 못하거나, 상황 자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대안을 모색하지 못하거나 혹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낼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닌지 판단할 수밖에 없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단순명쾌한 진리를 거부하는 권력의 모습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역사와 우리 국민에게는 지금까지의 혼란만으로도 충분한 불행이기에, 만일 권력의 존재 자체가 분열의 원인이라 한다면, 100번 넘는 대국민 사과가 오히려 국민에게는 1,000일이 넘는 고통으로 다가온다면, 차라리 권력 스스로 진퇴를 엄중히 판단하는 것이 역사와 민족을 위한 길임을 고통스럽게 촉구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우리 순례단 또한 고행의 길을 계속 가지 않을 수 없다. 이 길이 스스로 빛이고자 하였고 희망을 갈구하는 국민들께 드리는 위안의 길이기 때문에, 생명과 평화, 사람의 길을 위한 우리들의 기도는 마침내 묘향산의 상악단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2009년 6월 6일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단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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