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용화사 - 천년을 지켜온 미륵기도 영험도량

부안 용화사 - 천년을 지켜온 미륵기도 영험도량

2011년 08월 08일 by jeungam

    부안 용화사 - 천년을 지켜온 미륵기도 영험도량 목차

 

부안 용화사 대웅전

전북 부안군 행안면 부안 기상관측소 작은 길로 들어서면 송정마을  고성산 자락에 용화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용화라는 말은 미륵부처님의 세계를 말하는 용화세계에서 따온 말로 미르불이 자리잡고 있어 거기서 용화사라는 절 이름도 탄생한것으로 보입니다.  용화사는 약 1200년전인 백제의자왕 2년경에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당시는 백제 말기에 해당하던 때로 백제의 국운이 쇠퇴하고 민심이 흉흉하던 때라고 합니다.
이때 인근의 부안 개암사에 주석하고 있던 묘련왕사(묘현선사라는 설도 있음)가 새벽에 장엄한 서광이 비추는것을 보고 그곳에 당도하니 커다란 암석이 있어 그 바위로 미륵불을 조성하고 백제의 국운과 민생의 안락을 위해 참회정진을 하면서 창건했다고 합니다.


 

그후 미륵참회도량으로서 크게 번성하였고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크게 번성했다고 합니다.
특히 주민들 사이에서는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도량으로 자리잡았고 특히 미륵불은 자식을 낳지 못하는 사람들은 득남을 위해 기도하면 반드시 자식을 얻는다고 하여 득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네 이름도 미륵동, 미륵골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지금도 그렇게 불리고 있습니다.

 이 미륵불은 국가의 위급한 상황이나 큰 변이 생기면 온 몸에서 땀을 흘리는 이적이 보인다고 합니다.
일본으로 부터 행방되던 때나 한국전쟁, 남북 적십자 회담이 열릴때에는 온몸에서 물기가 흘러내린다고 합니다.

용화사는 조선시대 승유억불정책으로 인해 미륵불은 땅속에 묻히게 되고 용화사도 퇴색하게 된것을 최근에 다시 절을 세우고 옛이름을 찾아 용화사라고 이름지었습니다.

 현재 용화사는 대웅전을 비롯한 많은 전각이 들어서 있고 경내도 제법 넓어 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고 있는 중이며 서해안 고속도로와 새만금 방조재의 완공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들리는 사찰이 되었습니다.

 

부안 용화사 미륵불

▲ 부안용화사 미륵불. 승유억불정책으로 인해 땅속에 묻혀있다가 150년전 쯤 풍화등의 자연현상으로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자 사람들이 미륵불이 땅속에서 미륵불이 솟아나왔다는 소문이 나자 다시 일으켜 세워놓았습니다.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소문이 있어 미르불의 코가 없어진것을 일제강점기에 시멘트로 코 부분을 복원해 놓았는데 많이 어색합니다. 
현재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71호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지만 사유지에 위치하고 있어 관리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부안 용화사 연꽃

▲ 용화사 입구의 작은 방죽에 백련이 심어져 있습니다. 
   아직 다 피지는 않았지만 절집에 연꽃은 잘 어울립니다.
   마을에서 소득사업으로 백련을 심어놓은것으로 보입니다.

부안 용화사

▲ 부안 용화사 전경
 대웅전 올라가는 계단 옆으로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을 용화사의 역사와 불사기록을 개겨놓은 공덕비입니다.
 대웅전 뒤로 보이는 건물은 옛 법당입니다.
 낡고 오래되서 곧 철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멀리 미륵불의 모습이 살짝 보입니다.

용화사 대웅전 삼존불

▲ 용화사 대웅전 삼존불입니다.
   전통방식의 닷집에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관세음보살, 대세지 보살의 삼존불을 봉안했습니다.

부안 용화사

▲ 대웅전 왼쪽에 봉안된 지장보살상.
   크기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만 특이한 점을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중생을 모두 품에 안으려는 지장보살의 원력을 상징한듯 합니다.

부안 용화사

▲ 극락전 삼존불의 모습입니다.
 아미타불을 주불로 관세음보살, 대세지 보살의 삼존불을 봉안했습니다.

부안 용화사

▲ 전각과 석탑사이로 미륵불의 모습이 보입니다.
  부안은 바다가 가깝고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아 바다의 안정을 바라는 해수관음상의 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