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산 순례길에서 청소년의 미래를 보다 목차
백두산 순례길에서 청소년의 미래를 보다
증심사 대원장학회 동북아 역사기행
▲ 백두산 천지에 오른 기행단 청소년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무등산 증심사가 운영하는 대원장학회가 지역 청소년들과 함께 백두산 순례를 떠났다. 기행단 청소년들은 백두산에서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주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의지를 다졌다.
무등산 증심사에서 운영하는 대원장학회(이사장 지장, 증심사 주지)는 6월 17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20명의 청소년 및 교사들과 함께 고구려 옛 땅인 단동, 집안, 환인, 통화를 거쳐 백두산 천지를 순례했다.
대원 장학회는 매년 2000여 만원의 장학금을 지역사회 인재들에게 전달해왔다. 그러나 매년 지급되는 장학금의 의미를 이해하는 학생들도 적고 실효성에도 의문이 들어 올해부터는 동북아 역사기행을 통해 지역 청소년들에게 민족역사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로 했다. 광주광역시 동구청(청장 유태명)도 행사 취지에 동감하고 백두산 순례에 함께했다.
16일 저녁 9시. 여행을 떠나기 전 기행단이 증심사에 모였다. 지장 스님, 유태명 동구청장, 이영자 후원회장(대원장학회)을 비롯한 기행단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동북아 역사기행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날 유태명 총장과 이영자 후원회장은 기행단 아이들에게 선물과 후원금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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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중국의 경계도시, 단동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30분 만에 중국 대련에 도착했다. 기행단은 대련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단동으로 이동했다. 단동은 두만강변의 도문시와 함께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는 대표적인 중국 국경도시이다.
기행단은 첫 일정으로 압록강 유람선을 탑승했다. 유람선은 10여분을 돌아 위화도, 월량도를 지났다. 위화도는 대륙으로 진출하려던 고려의 마지막 소망을 담은 이성계 군대가 회군을 한 곳이다. 압록강 중간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많다. 대부분 북한 땅이다. 위화도도 마찬가지다. 배는 그 옆 월량도를 지났다.
월량도는 중국 땅으로 중국부자들의 휴향지인 곳이다. 섬에는 고가의 아파트와 쇼핑센터가 들어서고, 저녁마다 네온사인을 밝혔다. 해가지고 어둠이 찾아들자 북한 땅은 암흑세계로 변한 북한과 대조를 이뤘다.
광개토대왕의 혼이 깃든 곳, 집안
집안은 고구려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이 있고, 광개토대왕과 그의 아들 장수왕이 묻힌 곳이다. 고구려가 가장 큰 대제국을 건설했던 역사적 장소이다. 집안은 평양성과 더불어 고구려 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유적답사에 앞서 지장 스님은 “지금은 고구려의 옛 땅을 잃어버렸지만, 언젠가 우리의 힘이 커지면 다시 찾아야한다.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자신들의 소수민족 역사로 만들어 왜곡하고 있다. 이것이 동북공정이다”라며, “우리가 조상의 역사를 모르면, 그것은 영원히 우리의 역사가 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버스는 1만 2000개의 고구려 무덤들이 널려있는 시내를 돌아 광개토대왕비로 향했다.
광개토대왕비는 1775자나 되는 동북아 고대사의 비밀을 간직한 아시아의 블랙박스이다. 1600년간 비바람을 맞고 견뎌낸 이 고대유물은 이제 중국양식으로 된 건물 유리벽 안에 갇혀있다. 안타깝게도 기행단은 비문 가까이서 사진을 찍을 수도, 현수막을 꺼낼 수도 없었다. 유물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며 모든 것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기행단은 고구려 유적지에서 백두산 천지까지 끝내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 단동 압록강변에 도착한 기행단
기행단은 광개토대왕비를 지나 500여m를 이동해 태왕릉에 도착했다. 그러나 태왕릉은 도굴과 심한 훼손으로 그 원형조차 짐작하기 힘든 지경이었다. 고구려의 전형적인 돌무지 무덤이지만 기단부분의 돌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훼손됐다. 중국인들은 무덤의 가장 윗부분까지 계단을 만들어 광개토대왕이 안치됐던 석실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집안에서 가장 놀랄만한 것은 1만 2000기의 무덤이었다. 그중 아시아의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장군총은 그 웅대함에서도 고구려의 기상을 엿볼 수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돌들은 홈을 파서 서로 맞물려 쌓아 무너지지 않게 정교하게 건축됐다. 꼭대기 층에는 왕과 왕비의 관실이 놓여있었으나 이미 도굴 당해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두 번째 날 일정의 마지막으로 기행단은 오회분 5호묘를 갔다. 5개의 봉토 중 5번째에 해당하는 분묘라는 뜻으로, 6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고구려시대의 벽화고분이다. 석실통로를 따라 들어간 분묘에서는 1600년 전 고구려인들의 아름다운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와 함께 고구려인들의 문화와 생활상을 그린 벽화이다.
석실은 그림 보존을 위해 조명을 사용하지 않아 매우 어두웠다. 어두운 석실에서 손전등의 불빛을 통해 바라본 사신도의 모습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죽은 고구려 귀족은 사신의 보호를 받고 영생을 누리는 염원을 했을 것이다.
고구려의 유적을 둘러본 기행단은 두 번째 숙소가 있는 통화로 이동했다. 첫날과 달리 둘째 날부터는 아이들에게 연극 만들기 미션이 주어졌다. 유적지를 둘러보고 느낀 점을 연극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극본을 짜고, 배역을 정하는 등 연극을 만들기 위해 분주했다. 이날 대부분의 아이들은 장수왕과 광개토대왕에 관한 연극을 준비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
기행단은 백두산 순례를 위해 새벽같이 호텔을 나섰다. 천지를 볼 수 있는 확률이 채 2%도 안 되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기행단은 백두산의 서파를 통해 천지에 올랐다. 서파는 백두산을 갈 수 있는 여러 가지 코스 중 최근에 개발된 곳으로 언덕을 따라 하늘로 이어지는 듯한 얕은 계단을 트레킹하듯 올라가서 천지를 볼 수 있는 코스이다.
하지만 무려 1200여개의 계단이 펼쳐져 있어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백두산의 위엄을 나타내는 듯 했다.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길은 아직 여름이 오지 않은 봄날의 날씨였다. 여기저기 핀 야생초와 녹지 않고 남아 있는 설경이 백두산의 신령스러움을 자아냈다. 1200개의 계단을 힘겹게 오르자 눈앞에 천지가 아름답게 펼쳐졌다. 구름 한 점 없이 날씨가 좋아 전경을 볼 수 있었다.
대원장학회 이사장 지장 스님은 기행단에게 “오늘 천지를 본 것은 큰 복이다. 오늘 천지의 모습을 두고두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민족의 앞날을 이끌어 달라”고 당부했다.
기행단 최훈석(정광중)군은 “빨리 통일이 되어 우리땅을 통해 백두산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 국내성
중국 북구 요령성에 위치한 환인현은 만주족 자치구로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이 첫 번째 수도인 졸본성의 터로 추정되는 오녀산성이 있다. 원래 졸본의 평지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산성인 오녀산성만 남았다.
오녀산성은 적의 침입에도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곳이다. 깎아지른 절벽과 정상에는 식수와 밭을 일굴 수 있고 족히 1~2만 명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실제로 이곳은 전쟁시에만 사용됐다.
험난한 길을 걸어 정상에 올라 내려다본 압록강과 평야는 장관이었다. 이곳에서 주몽이 전쟁을 지휘하고, 자신의 영토를 둘러보았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험난하기 그지없는 지형은 오랜 기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고구려는 이 험준한 산골을 방어기지로 삼아, 서쪽으로 펼쳐지는 끝없는 몽골평야로 영토 확장을 시작했던 것이다.
▲ 장수왕릉으로 추정되는 장군총 앞에서.
고구려 이야기를 연극으로
역사기행의 마지막 밤은 단동에서 지냈다. 이날 저녁 기행단은 3개 팀으로 나누어 연극발표회를 준비했다. 엘리베이터 로비에서 진행된 이날 발표회에서는 시종일관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지장 스님과 현지 가이드가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가운데, 아이들은 기발한 웃음과 감동을 주는 연극을 선보였다.
첫 번째 팀은 주몽의 활쏘기 대회와 백두산 여행기를 선보였다. 다음 팀은 장수왕릉의 도굴과 훈계, 마지막 팀은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연극으로 표현했다. 직접 만든 연극대본에, 소품을 준비하고, 분장까지 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늠름한 고구려 후손의 기상이 넘쳐 흘렀다.
지장 스님은 심사평을 통해 “고구려는 다시 찾아야 될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의 땅이다. 연극을 통해 이를 표현한 기행단에 감사하다”며 “앞으로 한국에 돌아가 민족의 미래를 책임지는 기둥으로 성장해 달라”고 말했다.
대원장학회는 이번 순례를 통해 새로운 장학 사업을 시도했다. 아이들에게 세계문화의 견물을 넓히고, 민족의 역사 현장을 보여줌으로써 돈으로 다할 수 없는 심안을 열어 주었다.
<현대불교신문 양행선 광주전남지사장 myb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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