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동국사, 독립운동가 변호한 일본인 인권변호사 후세 다츠지 63 주기 추모제

군산 동국사, 독립운동가 변호한 일본인 인권변호사 후세 다츠지 63 주기 추모제

2016년 10월 01일 by jeungam

    군산 동국사, 독립운동가 변호한 일본인 인권변호사 후세 다츠지 63 주기 추모제 목차

군산 동국사, 인권변호사 후세 다츠지 63 주기 추모제

“독립운동 지지한 후세 다츠지에게 감사”

군산 동국사, 인권변호사 후세 다츠지 63 주기 추모제

독립운동 열사들 변호하며 일본정부 비판한 다츠지

1953년 72세로 타계했지만 대한민국 건국장 추서

일본인이면서 유일하게 2004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인권변호사 후세 다츠지의 63주기 추모제가 군산 동국사에서 봉행됐다.

군산 동국사(주지 종걸)은 9월 13일 일본 조동종 운상사 주지 이치노헤 쇼코스님, 부주지 니요카 쇼신스님, 정영준 후세 다츠지 인권평화기념사업회장, 후세 다츠지의 외손자인 오이시 스스무 전 일본평론사 사장, 김귀동 변호사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제를 봉행했다.

종걸스님과 이치노헤스님이 각각 한국과 일본식 추모의식을 집전한데 이어 열린 추모회에는 애국가 봉창, 헌화, 후세 다쓰지 약력소개, 후세 다쓰지 변호사에 대한 영상상영, 추도사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치노헤 쇼코스님은 추도사를 통해 “후세 다츠지 선생은 내가 존경하는 위대한 인물로

그의 평생에 걸친 인권 활동. 특히 한일 문제에서의 활동은 내 주제 인 '한일 불교 교류'에도 큰 제안과 용기를 제공하고 있다” 며 “종교와 사법에 국경이 없으며 함께 인권을 존중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전망하며 후세 다츠지 선생의 정신을 우리 채찍으로 더욱 정진 할 것이다”고 밝혔다.

유가족을 대표해 참석한 후세 다츠지의 외손자인 오이시 스스무 前 일본평론사 사장은 “1953년 할아버지가 72세로 세상을 떠날 때 히비야 공회당에서 열린 추도식에 남과 북을 넘어 많은 한국인이 참석한 것을 기억한다” 며 “추모제를 열어준 동국사 주지 종걸스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할아버지가 일본의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조선인들을 변호하고 조선의 소작농민을 옹호한 것은 동학농민 학살과 명성황후 시해등 역사적인 사건에 일본국의 일원으로 배상하고 싶었던 것” 이라며 “일제 침탈의 중심이었던 군산시에서 후세 다츠지의 업적을 회고하는 것이 한일관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인 후세 다츠지(1880~1953)는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검사로 임용됐으나 법률의 미비점과 적용에 회의를 느껴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1911년 ‘조선의 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함’ 이라는 글을 통해 한일합방이 일제의 침략임을 규정하고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지했다. 1919년 재일조선유학생들이 발표한 2.8독립선언의 주체인 최팔용, 송계백등을 변호하고 1924년 도쿄 궁성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 의사의 변호를 맡았다.

1928년에는 일본 천황일가의 암살을 모의한 대역사건의 주모자인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변호를 맡기도 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때는 일본정부와 군부에 의한 유언비어로 인한 사건임을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동양척식회사를 통해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을 때 나주지역 농민들을 위해 510만평의 토지 반화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광복후에도 한신교육투쟁, 도쿄 조선고등학교 사건등 재일 한국인 관련 사건을 도맡았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일본인으로는 유일하게 2004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그의 고향 이시노마키 아케보노미나미공원의 기념비에 적혀있는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라는 글귀는 평소 그의 지론이기도 하다. <조동제 현대불교신문 전북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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