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5대 총림 방장 하안거 결제 법어

조계종 5대 총림 방장 하안거 결제 법어

2011년 05월 17일 by jeungam

    조계종 5대 총림 방장 하안거 결제 법어 목차

영축총림 방장 원명스님 하안거 결제법어

원명스님

法界衆生過百年(법계중생과백년) 이나
此心無見夢中眠(차심무견몽중면) 이라
阿彌陀佛何求遠(아미타불하구원) 이리오
與我同名坐目邊(여아동명좌목변) 이로다

법계의 중생들이 백년을 살아가건만
이 마음을 보지 못하고 꿈속을 헤매고 있네.
어찌 멀리서 아미타불을 찾으려하는가?
내 근본이름과 똑같은 이가 눈앞에 앉아있거늘.

 
중생의 어리석은 무명의 구름이 법계를 가려서, 지혜의 태양이 빛을 뿜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자신의 근본조차 잃어버리고 밖으로만 치닫고 있습니다. 탐욕의 불길이 자신을 태우는데도 벗어나려는 마음을 내지 않고 쉼 없이 욕심의 기름을 끼얹고 있습니다.

 
삼독은 바다가 되고 산이 되어 자신을 집어 삼켜버리는데, 누가 나서서 그 불길을 잡아 줄 수 있겠습니까?

 
밖으로 내달린 만큼 되돌아서는 결단과 용맹심을 내어, 스스로 무명의 산을 밝히는 대법거(大法炬)가 되십시오.

이제 큰 자비와 지혜를 갖추신 부처님의 대웅력(大雄力)을 발해야 할 때입니다.

만유중생에게 광명을 놓아 옷을 삼게 하고 공덕산을 오르게 하는 것이 수행자의 책임이며 원력입니다.

 
청정한 덕을 원만하게 닦고 법계를 무한자비(無限慈悲)로 장엄하게 하기 위해 자신을 태워야 합니다. 그러면 옮기는 걸음마다 모든 인연의 끈은 정화되고 이치는 밝게 드러날 것입니다.

 
수행자는 여법한 위의를 갖추되 모든 중생들과 융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행하여 과를 성취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것을 법계 중생에게 회향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깨달은 법을 진실하게 펴서 세상을 지혜롭게 하는 것은 부처님과 역대조사의 자비였습니다. 이 대자비는 부처님께서 삼아승지를 뛰어 넘어 성불하신 근원입니다.

 
이제 나를 밝히고, 다시 그 빛을 회향할 수 있는 무연자비(無緣慈悲)를 일으켜야 모든 부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간다 할 것입니다.

 
깊고 넓은 참 가르침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결제에 들어가는 것이니 단속하고 철저히 해야 할 것입니다. 만나기 어려운 법을 다행히 만났다는 난조상(難遭想)을 내어서 모든 것에 걸림이 없는 정법의 성(城)을 쌓아 올려야 합니다.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이치에 귀의하고 몸과 마음을 다해 천진면목을 밝혀 눈길 닿는 곳마다 원만진심(圓滿眞心)의 분신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맛보아야 할 것입니다.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누가 나와 손을 잡고 놀겠느냐고 한소리 토할 때 수행자의 작은 분을 이루었다 할 것입니다.

窮苦已經無量劫(궁고이경무량겁) 이나
不信常擎如意珍(불신상경여의진) 이라
不住舊時無相貌(부주구시무상모) 하고
外求知識也非眞(외구지식야비진) 이로다

곤궁한 고통을 무량겁이나 지나왔건만
내 손에 여의보배 들고 있었음을 믿지 못하네.
옛 부터 지닌 무상의 근본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선지식을 찾는다면 참되다고 하지 못하리라.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 하안거 결제법어 

 

 

설정스님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을 쉬어 고요하고 갈애를 소멸한 사람은 과거에도 집착하지 않고,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인지도 걱정하지 않고, 현재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람은 좋고 싫음을 떠났기에 성내지 않고, 두려움도 없고, 교만하지 않고, 한탄하지 않는다 하였는데 과연 현재 우리는 어떠한가?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하여 요번 하안거 결제 중에 근진(根塵)에서 벗어날 일이다.

 
실제에는 치암범부(痴暗凡夫)이면서 법(法)이다 도(道)다 읊어대는 사람들 정신 차려 공부할 일이다. 염라대왕이 이런 자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다생(多生)에 익혀온 습성(習性)을 정복하고 그 근본(根本)에 체달한 후에야 물심(物心)이 일여(一如)한 도리를 자가용(自家用)으로 쓰는 방법(方法)을 알게 될 것이다.

만공선사(滿空禪師)는 일심(一心)이 곧 만상(萬像)이고 만상(萬像)이 곧 일심(一心)이다 이것이 가깝지도 멀지도 아니하여 건곤(乾坤)과 더불어 같이 덮이고 실렸으며 일월(日月)과 더불어 같이 비추어서 원융무애(圓融無碍)하고 자유자재(自由自在)하다 하였습니다.

중생(衆生)이란 소아적(小我的) 개체(個體)에 국한하여 업풍(業風)에 불려서 사생육취(四生六趣)에 헤매게 되는 것이요

부처는 일체우주(一切宇宙)를 자신화(自身化)하여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다 내 한 몸이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川世界)가 다 한집이기 때문에 취사(取捨)를 임의대로 한다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일심(一心)은 물(物)을 상대로 하는 일심(一心)이 아니라 물(物)과 심(心)이 둘이 아닌 진여법계(眞如法界)의 일심(一心)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재 경이로운 속도로 발전하는 양자학이라든지 유전공학은 서구사상의 이원론적(二元論的) 형이상학이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관념적 허구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의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은 불교의 연기적 자연자체를 중심으로 해서 나타나야 하며 이때 그 가치의 중심(中心)은 인간뿐 아니라 생명(生命)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즉 올바른 세계관(世界觀)은 인간(人間)과 자연(自然)을 둘로 갈라서 인간(人間)을 담론(談論)의 중심(中心)에 놓는 갈라서 이원론적(二元論的) 인간중심주의(人間中心主義)가 아니라 인간(人間)과 자연(自然)을 연기적(緣起的) 또는 유기적(有機的)으로 생주이멸(生住異滅)하고 성주괴공(成住塊空)하는 일원론적(一元論的) 생태중심주의(生態中心主義)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고 선사(禪師)들이 말씀하신 일심(一心)이 곧 만상(萬像)이요 만상(萬像)이 곧 일심(一心)인 도리입니다.

이(咦),

쓸데없는 구업(口業)으로 선문(禪門)을 더럽혔군.
참선일착최당연(參禪一着最當然)
이륙시중요기의(二六時中要起疑)
홀득통신한한출(忽得通身寒汗出)
행행보보전전기(行行步步轉全機)

참선하는 하나만이 가장 좋은 거라네
행주좌와에 애써 의심을 일으켜라
홀연히 전신에서 식은땀이 흘리고 나면
하는 일마다 대기대용이라네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

조계총림 방장 보성스님 하안거 결제법어

보성스님

삼하결제법문(三夏結制法門)

이번에는 불탄절(佛誕節) 연등불사(燃燈佛事)가 끝나자 곧 여름 결제가 되니 우선 연등(燃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始作)해서 결제법문(結制法門)을 할까 합니다.

고인의 게송(偈頌)에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요 인인각하청풍불(人人脚下淸風拂)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나 얼굴에는 해와 달이 밝게 비치고 발아래는 맑은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다는 말입니다.

부처님과 중생(衆生)이 똑같이 자성광명(自性光明)을 발(發)하고 있지만 업식(業識)에 가려져서 수용(受用)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衆生)인 것입니다. 연등법회(燃燈法會)는 우리 각자(各自)가 지니고 있는 자성광명(自性光明)을 찾아내서 부처님처럼 수용(受用)하자는 서원(誓願)을 세우는 의식(儀式)인데 요즘에 와서는 본원(本願)을 망각(忘却)하고 사원경제(寺院經濟)를 충당(充當)하는 수단(手段)으로 전락(轉落)해 가는 감(感)이 점점 짙어지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痛歎)할 일입니다.

부처님 당시(當時)에도 부자(富者)들이 공양(供養) 올린 등(燈)들은 다 바람에 꺼졌는데 빈자일등(貧者一燈)만이 유일(唯一)하게 바람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신심(信心)이 부족(不足)한 화려(華麗)한 등(燈)보다는 지극(至極)한 신심(信心)으로 밝힌 작은 등(燈)의 공덕(功德)이 더 수승(殊勝)하다는 것입니다.

금년(今年) 삼하결제대중(三夏結制大衆)은 바른 신심(信心)으로 바른 공부(工夫)를 해서 불조(佛祖)의 본원(本願)에 어긋남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대혜어록(大慧語錄)에 당초장위모장단(當初將謂茅長短)터니 소요원래지불평(燒了元來地不平)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풀이 들쑥날쑥 났다고 해서 태워버리고 보니 땅이 본래 울퉁불퉁하더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공부(工夫)를 애써서 해도 생각이 바르지 못하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공부(工夫)에 의심(疑心)이 나면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의심(疑心)을 풀고 가끔 조사어록(祖師語錄)을 살펴봐서 사견(邪見)이나 편견(偏見)에 빠지는 것을 미리 막아야 합니다.

야행(夜行)에 막답백(莫踏白)하라. 불수정시석(不水定是石)이니라.
밤에는 흰 것을 밟지 말라. 물에 빠지거나 돌부리에 채일까 합니다.

주장자(拄杖子)를 세 번 구르고 하좌(下座)하다.

고불총림 방장 수산스님 하안거 결제법어

수산스님

천지간(天地間)의 순환은 한치의 어그러짐도 없어서, 오늘도 엄정하게 굴러가고 있습니다. 삼라만상이 모두 부처님의 몸이요, 부처님세계를 낱낱이 장엄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순환은 조그마한 사심(邪心)도 없이 제각각의 도리에 맞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오직 사람들만이 탐ㆍ진ㆍ치 삼독심에 물들어 자신을 망치고, 나아가 자연마저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모든 탐욕과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참마음을 회복하여 참된 사람이 되어야만, 스스로 자신을 구제하고 이 세계를 재앙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참사람이 되어 부처님세계를 참되이 장엄하도록 하여야겠습니다.

참사람이 되는 길은 거창한데 있지 않습니다. 자신을 성찰하고 소욕지족(小欲知足)할 줄 아는데서 부터 비롯됩니다. 불자님들은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갖추고 실천행을 몸소 해나감으로써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말로만 외치는 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 하안거 결제에 들어가는 대중들은 모두 열심히 정진하여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갖추고, 인천의 사표가 되어 세간의 등불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참선지재기의단(參禪只在起疑団) 의거의래사화단(疑去疑來似火団)
불각전신도방하(不覺全身都放下) 대천사계일호단(大千沙界一毫端)

참선은 다만 의단을 일으키는데 있으니
오직 의정으로 오고가 불덩이 같이 되어
잠깐사이에 전신을 통째로 내려놓으면
대천세계가 한 터럭 끝에 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