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이 우리들 가슴에 적고 간 이야기들

법정 스님이 우리들 가슴에 적고 간 이야기들

2013년 02월 24일 by jeungam

    법정 스님이 우리들 가슴에 적고 간 이야기들 목차

법정 스님이 우리들 가슴에 적고 간 이야기들

가슴이 부르는 만남

 

지인 18명의 인연담 수록

힘든 이에게 위로 주는 이해인 수녀,

〈멈추면 비로소…〉의 혜민 스님도

스님의 말과 글에서 위로 받고 힘 얻어

가슴이 부르는 만남변택주 지음 / 불광출판사 펴냄 / 1만5천원

법정, 그 두 글자는 글자만으로 설법이고 수필이다. ‘부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여야 한다고 그가 말했듯, 그의 이름도 이제 맑고 향기로운 삶의 보통명사처럼 들린다. 홑겹 가사 하나 덮고 적멸의 길로 떠난 지 3년. 그를 지척에서 만났건 먼발치에서 보았건 그와의 만남은 만남 자체가 고운 ‘문장’이다. 혜민 스님, 이해인 수녀, 이철수 화백 등 열여덟 편의 고운 만남을 실은 책은 스님과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의 이야기 〈법정, 나를 물들이다〉의 후속으로, 2012. 1 ~ 2013. 9  현대불교신문에 연재되었던 ‘법정 스님과 만난 사람들’의 후반부다.

 

“우연한 스침은 있어도 우연한 만남은 없다. 만남이 결을 이룬다. 물이 논에 들어 벼를 살리고 산에 들어 푸나무를 살리듯이, 뜻 맞는 사람들이 만나 비벼대며 서로를 빛내는 결이 바로 숨결이다.” 저자의 말대로 책은 ‘만남’에 펜을 겨누고 있다. 그 만남 중에서 법정 스님을 좀 더 가까이서 만났던 만남들이다.

 

책은 네 마디로 나눠져 있다. 첫째 마디에는 ‘세상을 벼리다’라는 제목으로 김선우, 박석무, 최완수, 도법, 윤구병의 만남을 실었다. 둘째 마디(어우렁 더우렁)에는 지묵, 이해인, 임의진, 금강, 혜민의 만남을 실었고, 셋째 마디(내가 길이다)는 김종서, 이철수, 홍쌍리, 문순태의 만남이다. 마지막 넷째 마디(맑고 향기롭게)는 배차년, 나석정, 정태호. 김의식의 만남이 실려 있다.



법정스님1995년 봄 길상사. 법정 스님이 행지실 돌담 위로 핀 매화와 마주섰다.

 

“어디로 가야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때 진실한 만남은 앞으로 나아갈 힘과 용기를 준다. 그대여, 무릎을 꿇기엔 아직 이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이 있다면 희망이 있는 것이다. 희망과 위로도 주고받는 것이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멘토들도 홀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들도 기댈 수 있는 따뜻한 등이 필요했고, 누군가 그들에게 등을 내주었다.” 따뜻한 시로 우리에게 기쁨을 보내는 이해인 수녀. 법정 스님의 글과 만남으로 인해 인생의 터닝포인트마다 물꼬를 터 줘서 든든했다고 기억한다. 유명세 때문에 도망치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때는 스님이 농담으로 미소를 되찾아 주기도 했다. 이해인 수녀는 “사람이 아프면 그 사람만 아픈 게 아니라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친분 농도만큼 아프다,”는 법정 스님의 글을 가슴에 새기고서, 암에 걸려 몸이 고달플 텐데도 자기를 찾아오는 이들을 정성껏 만나 오늘도 기쁨을 나누고 있다.

 

중학생 시절 〈무소유〉를 읽고 영혼의 울림을 느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 스님은 법정 스님 책이라면 무조건 사서 읽은 열혈 독자였다. 미국에 유학 갈 때도 스님의 책 〈새들이 날아간 숲은 적막하다〉를 챙겨 가서 삶이 고달플 때마다 꺼내 읽었다. 출가 후 미국에서 고대하던 법정 스님을 뵙고 자주 모신 혜민 스님은 법정 스님이 승려가 글을 쓰는 문화를 만드셨기에 오늘의 자신도 있을 수 있었다면서 법정 스님을 인자한 할아버지로 기억한다.

 

“제가 아주 젊어서 법정 스님이 번역하신 부처님 일대기를 봤어요. 반듯한 우리말로 번역한 부처님 일생을 만나면서 ‘이렇게 친절한 분이 계신가?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중에 보니까. 〈무소유〉란 수필집도 내셨더군요. 이런 인연이 쌓일 거라고는 짐작도 못했어요. 그랬는데 뒷날 제가 스님 대표작 〈무소유〉 표지 그림도 그리게 되고, 뒤늦게야 이렇게 만나고 또 흘러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씨앗을 많이 뿌리신 분이세요. 저는 어려운 걸 어렵게 이야기하는 사람보다는 어려운 걸 쉽게 이야기해 주는 사람을 따르고 존경했어요. 스님도 그런 분이셔서 옆에서 무슨 소리를 해도 같이 가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어요.”

 

젊어서는 스님의 책만 열심히 봤다는 이철수 화백(판화가). 그는 〈무문관〉 48칙을 하나하나 그림으로 만드는 연작을 준비하고 있다. 선화를 해 보라고 했던 스님 말씀에 대한 화답으로 “그림으로 창을 내는 일”이란다.

 

우리는 법정 스님을 〈무소유〉를 비롯한 많은 글을 남긴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스님의 글은 스님의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님은 만나는 사람들의 가슴 가슴에 늘 잊지 못할 글들을 적고 있었다. 스님이 만나는 가슴마다에 적어 놓은 수필들이다.

 

스님은 이제 당신이 심은 나무 곁으로 돌아가 함께 비를 맞고, 바람을 맞고 있다. 스님을 볼 수는 없지만 대신 스님을 만난 이들이 스님을 닮아가고 있다. 세상이 스님을 닮아가는 날을 기대하게 한다.

<현대불교신문 박재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