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처럼 산에 살던 ‘절도범’ 스님 이야기

‘범’처럼 산에 살던 ‘절도범’ 스님 이야기

2012년 01월 09일 by jeungam

    ‘범’처럼 산에 살던 ‘절도범’ 스님 이야기 목차

‘범’처럼 산에 살던 ‘절도범’ 스님 이야기
美 보스턴 문수사 도범 스님 수상집 펴내

 

구도자의 발자취
구도자의 발자취│도범 스님 지음│행림서원│1만2000원

1992년 보스턴에서 문수사를 창건하고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일에 모든 힘을 쓰고 있는 도범 스님의 수상집이다. 도범 스님은 한국 차의 태동기에 온몸으로 우리 차를 알리는 데 앞장섰던 다승(茶僧)이다. 은사 일타 스님의 영향으로 차운동을 시작하면서 차밭을 가꾸게 되고, 다기 문제에도 앞장서면서 선방 스님들을 대상으로 차문화 강의 와 시연을 했는데, 그것이 선원에서 최초로 우리 차를 알렸던 시발점이 되었다. 그는 항상 함께하는 신도들의 정성을 생각하고 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겸손함과 따뜻함과 사랑이 담겨 있는 편지를 써왔는데, 이번 책은 그 편지를 모아 엮은 것이다.

“세상이 싫어서 절에 갔더니 세상이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道)가 산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기에 불교성지를 비롯해 유럽과 미국까지 떠돌며 찾고 있습니다. 세속 출세는 시작도 못해봤으며 글자 그대로 속세에서 뛰쳐나오는 출세(出世)를 했습니다.”

美 보스턴 ‘절도범’ 스님의 말이다. 스님이 ‘절도범’인 까닭은 법명이 도범이기 때문.
스님은 “은사스님에게서 받은 법명이 도범 인데 부모에게 효도하고 있지 못하니 세속 성을 붙여 쓸 수 없고, 수행을 잘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 출가했다는 이유로 ‘석도범’이라 할 수도 없다. 절에서 살고 있으니 ‘절도범’”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절도범’ 스님은 “자신은 남의 귀중품이나 지갑을 훔치는 절도범이 아니라, 남의 슬픔ㆍ외로움ㆍ아픔ㆍ괴로움을 훔치는 절도범이다”라고 설명한다.

‘절도범’ 스님이 최근 <구도자의 발자취>를 펴냈다. 책은 미국에서 20여 년을 지내온 스님이 시주를 받을 때마다 고마움의 편지를 쓴 것을 모아 엮은 것이다.

저자가 살고 있는 보스턴은 미국의 교육 도시이다. 많은 유학생 수 만큼이나 물가 비싸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사찰이 정착하기 어려운 곳에 ‘절도범’ 스님은 1992년 문수사를 창건하고 지금까지도 전법에 진력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에 가기 전 한국차를 알리는 데 앞장섰던 다승(茶僧)이었다. 스님이 차를 만난 것은 은사 일타 스님의 영향이었다. ‘절도범’ 스님은 차운동을 시작하면서 차밭을 가꾸게 됐고, 선방스님들을 대상으로 차문화 강의ㆍ시연을 했다. 이것이 선원 최초로 우리 차를 알린 시발점이었다.

저자는 문경 봉암사 주지를 지내면서는 수행환경을 지키기 위해 일주문 밖 산문을 막던 선승이기도 했다. 10ㆍ27 법난 때는 총무원을 찾아가 종단 사태를 수습하는데도 일조했다. 이후 도미(渡美)해 문수사를 창건한 스님은 美 동부 승가회 초대회장을 역임하고 全 미주 승가회 고문 및 보스턴 문수사, 마이애미 보현사 회주를 맡고 있다.

먼 이국땅에서 포교하고 있는 ‘절도범’ 스님의 화법은 유쾌하다.

 

한 신도가 “스님은 입적 후에 다음 생은 어느 곳에 태어나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아마 극락세계에 갈 것 같다”고 답했다. “뭐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라는 반문에 스님이 대답했다.

“초등학교는 면에서, 중학교는 읍에서, 고등학교는 시에서, 대학교는 특별시에서, 승려생활은 미국에서 하고 있으니 다음 생은 극락세계에 가지 않겠습니까?”

책에는 저자가 출가한 이유를 비롯해 불자로서 삶을 사는 지혜가 가득하다.

 

“눈은 겉만 보이고 귀는 소리만 들리므로 참으로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고 가슴으로 들어야 한다. 사람의 몸에 영양이 필요하듯 우리 영혼에도 기도가 필요하며 기도로써 맑게 밝힌 마음으로 보면 올바른 길이 보인다.”

저자는 “더 많이 더 높은 곳을 향해 소유로써 행복을 찾으려고 하면 끝이 없다. 욕심주머니는 아무리 채워도 부족하고 부족하면 괴로움이 따른다”며 “‘이정도만 해도 다행’이라며 스스로 만족해 하면 그 순간부터 행복의 문이 열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 : 도범
도범 스님은 1967년 합천 해인사에서 동곡당 일타 스님의 상좌로 출가하신 후 해인사선원을 시작으로 봉암사, 망월사, 극락암, 도솔암 등에서 참선수행을 하셨고 해인사 율원 제1회 졸업생이다. 스님은 대학 시절 대학생불교연합회 발기인으로 수련회를 통해 불교에 입문했다. 고우 스님에 이어 봉암사 주지를 역임하였고, 서암 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결제는 물론 산철결제까지 외호를 하였다. 그때 수많은 관광객의 출입이 스님들의 참선수행에 방해가 되자 선원 스님들과 함께 일주문 밖 산문을 막았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산문철폐가 계속되고 있다. 또한 10ㆍ27법난 때는 봉암사 산철결제 대중으로 계시던 탄성 스님을 비롯하여 여러 대덕 스님들을 모시고 총무원에 올라가 종단 사태를 수습하는 데 그 역할을 하시도록 도왔다.

1992년 세계적인 명문대학과 교육의 도시인 보스턴(Boston)에 지혜의 도량인 문수사를 창건하셨으며, 2년 후에는 마이애미(Miami)에 보현사를 창건하셨다. ‘깨어있는 마을’ 웨이크필드(Wakefield)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으며 그곳에 자리한 문수사는, 북쪽으로는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큰 바위 얼굴』로 유명한 화이트 마운틴(White Mt.)이 있고, 동쪽으론 하버드 대학, MIT 대학, 찰스 강(Charles River)이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동부 승가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셨으며, 현재는 전 미주 승가회 고문 및 문수사와 보현사 회주로 계시며 한국불교를 타민족에게 포교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