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불교는 정권의 들러리가 아니다

[기자수첩] 불교는 정권의 들러리가 아니다

2008년 06월 10일 by jeungam

    [기자수첩] 불교는 정권의 들러리가 아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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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일인 6월 6일 낮. 이명박 대통령은 불교계 지도자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성난 민심을 수습할 '고언'을 듣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였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고언'을 듣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에 급급했다. 불교계도 '불교가 이명박 정권과 청와대의 들러리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날 오찬에는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스님,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스님, 진각종 통리원장 회정정사,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자승스님,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스님이 참석했다. 천태종 총무원장 정산스님은 종단 내 행사로 불참했다.

조계종 총무원은 오찬 직후 "총무원장 지관스님이 국민 여론과 정서를 감안해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는 재협상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정부가 여전히 추진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한반도대운하 건설에 대해서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여론과 정서를 감안하여 건설하지 말아야 한다며 반대의 뜻을 밝혔다"고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나 지관스님의 이같은 발언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오히려 종단대표들의 의견에 대해 이 대통령은 "30개월 이상의 수출을 금지하는 방안을 얘기해놨으니, 그 결과를 보고 보완할 부분이 있으면 보완할 계획"이라며 재협상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재협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대한 고언을 듣겠다며 마련한 자리에서 "재협상을 할 수 없다"는 기존의 입장만 확인해준 꼴이다.

6일 공개된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은 이날 오찬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브리핑은 "오찬에 앞서 6.25 때의 이런저런 가족사를 갖고 환담을 많이 하셨다"로 시작해, 독립유공자 자녀에 대한 지원 방안을 이야기했다. 이후 대화는 주로 이대통령이 중국 방문 성과에 대해 '쭉 설명을'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청와대는 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이 "우선 제일 먼저 시중 의견을 포함해서 건의사항이 있으면 얘기해달라"고 말하자 지관스님이 '쇠고기 수입 문제와 대운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이야기하자 "사실상 재협상과 다름없다", "한반도대운하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하겠다, 말겠다는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불교계 '원로'들을 초청해 놓고 '조언을 듣고 싶다'가 아닌 '건의를 하라'는 표현도 표현이거니와, 재협상과 운하건설 보류의 '건의'를 들어 놓고도 기존의 입장만 되풀이해 설명한 것이다.

7일 개신교 목사들을 만난자리에서는 현재의 상황을 "노무현 정권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9일에도 정진석 추기경 등 가톨릭 인사들을 만났지만 일각에서 “마지 못해 형식적으로 면담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오늘(9일)로 예정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는 미뤄졌고, 연일 광장으로 나오고 있는 수만명의 시민과 청와대 사이에는 경찰버스로 만든 '차벽'이 가로막고 있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대통령이 날이 갈수록 국민과 담을 쌓고 있는 것이다.

이대통령은 쇠고기 문제를 소통하려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과 대화해야 한다. 한반도대운하를 국민과 '소통'하고 싶다면, 먼저 "생명의 강을 살려야 한다"며 100일 넘도록 강을 따라 걸어온 생명평화순례단과 대화해야 한다.

지관스님을 비롯한 7대 종교 지도자들은 지난 4월 29일에도 청와대에 초청되어 "종교계가 에너지절약에 동참해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 조계종 총무원을 비롯한 불교계도 앞으로 청와대의 이같은 요식적인 '초청'에 응할지 여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00만 촛불대행진'이 열리는 10일 저녁 조계사 대웅전에서는 '쇠고기 재협상과 대운하반대'를 요구하는 법회가 열린다. 조계종 총무원은 "불교계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정당화하는 들러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지적을 심사숙고 해야한다.

신혁진 기자 webmaster@budgate.net

<출처 : 불교포커스 http://www.bulgyofocu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