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참가후기 - 김제 금산사 '선 나를깨치다'

템플스테이 참가후기 - 김제 금산사 '선 나를깨치다'

2010년 08월 11일 by jeungam

    템플스테이 참가후기 - 김제 금산사 '선 나를깨치다' 목차
 이 글은 지난 7월 28일부터 8월1일까지 3박4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김제 금산사 수행프로그램인 '禪. 나를 깨치다'에 참여하신 한 참가자의 체험소감입니다. 개인의 신상정보를 자세히 알고 글을 읽으시면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터이지만 개인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나이와 성별만 밝힙니다.

 이분은 서울에 거주하시는 47세의 여성분으로 친정 어머니와 장성한 따님과 함께 3대가 금산사 수행프로그램에 참여하셨으며 평범한 우리의 이웃입니다. 가슴에 와닿은 부분은 이분이 3천배 정진과 고성염불수행을 통해 가족때문에 행복한줄 알았더니 오히려 가족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다는 부분이 시사해주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템플스테이나 수행프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공개합니다.

관련글 : 김제 금산사 수행프로그램 ‘禪, 나를 깨치다 19기’ 진행

제목: 禪, 나를 깨치다
이름 : 김00 나이 47세(여)


 폭우와 폭염을 뚫고 달려온 금산사는 한가롭고 고즈넉하다.
장엄한 미륵부처님과 방등계단, 적멸보궁은 모악산의 안온한 품안에 넉넉하게 깃들어있다.

상냥하고 우아한 보살님의 사찰해설을 들으며 경내를 일람한다. 간간이 도반들의 낯을 익힌다. 범종을 타종하고 저녁예불에 동참했다.

수행은 맨발명상으로 시작했다. 비에 젖은 도량을 맨발로 천천히 걸으며 느리게 호흡하다보니 차츰 사위는 적막해지고 마음도 고요해져 감각만이 명료해졌다. 흙 속에 박혀있던 석영들이 반짝인다. 대적광전 앞 너른 뜰은 금강석을 뿌려놓은 듯 별빛처럼 빛나는 것들로 가득하고 들리는 것은 풍경소리, 또 풍경소리, 그 맑은 울림으로 적요하다.

탁, 탁, 탁.

마음나누기일정에 앞서 스님의 죽비소리에 맞춰 잠시 입정에 든다. 좌선을 하고 호흡을 의식하다보니 경직되었던 몸은 느슨해지고 마음은 단조로워진다. 그렇게 가만히 자신을 놔 둬본다. 억지로 생각하려하지 않아도 관계 속에서 왜곡되고 비틀린 마음들이 명멸한다. 자신을 몰아세워 살아온 날의 편린들이 불쑥불쑥 떠올라 고통스럽다.

일감스님은 그러한 것들을 고백하게 하셨다.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점차적으로 다른 입장에서 자신의 문제를 성찰하도록 도와주셨다. 자신을 직시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눈물이 말문을 막고 머리는 깨지도록 아팠다.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듯 답답한 채로 조금은 지루하고 나른한 일정이 순조롭게 지나간다. 요가명상은 몸과 생각을 편안하게 환기시킨다. 삼시세끼 공양을 꼬박꼬박 챙겨먹고 잡초 뽑기 울력을 한다. 그러면서도 염불을 놓지 않으며 마음을 챙겨본다.

프로그램은 모두 분별심과 망상(妄想), 혹견(惑見)을 쉬는 방법이었다. 염불과 화두(話頭), 오체투지로 일념(一念)에 들어간 자리에서 떠오른 한 생각을 깊이 사유하는 것이었다.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자기 생(生)을 반조(返照)’하는 과정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더듬더듬 기억하느라 몰입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만큼 시간이 지나자 분노와 슬픔을 동반한 생각들이 솟구쳐 올라 오히려 괴로웠다. 까마득히 잊었던 기억들이 생생하고 선명하게 떠올랐다. 대부분 가까운 관계, 가족과 관련된 것이었다. 잡초처럼 뿌리 깊은 분노와 슬픔이 엉겨있는 기억을 관조하자니 가슴이 아프다. 눈물이 쏟아졌다. 어리고 약한 내가 탐진치의 고통 속에 있을 때 관세음보살님은 어디계셨느냐고 목이 터져라 눈물범벅 목탁염불을 한다.

기억은 대개 ‘나’를 위주로 떠올랐다. 가족 때문에 행복한 것인 줄 알았는데 기억 속의 ‘나’는 ‘가족’ 때문에 괴로워했다. 가족은 내게 상처였다. 과거로 갈수록 기억은 무성(無聲)의 영화를 보듯 담담했다. 반조(返照)는 참회의 마음을 일으켰다. 나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적나라하게 아는 것이었다.

염불은 나를 직시(直視)하는 데에 필요한 용기를 주었다. 과거는 아름답게 윤색된 막연한 추억이 아니었다. 지난 날, 나는 늘 어리석었다. 가능하다면 과거를 뭉텅 잘라서 끊어내고 싶었다. 새롭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어 후회스러웠다.

“관세음보살님! 제가 경계에 부딪혀 탐진치의 마음을 낼 때마다 ‘관세음보살’님을 염하면 언제든지 달려오셔서 그 마음을 제압하시고 불퇴전의 용기로 또 다른 업을 짓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발원했다.

그리고 또한 감사의 마음도 들었다. 나의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하신 불보살님이 늘 지켜주셨음을 깨달은 순간 한량없는 감사와 환희심에 또 눈물이 흐른다.

참선이라면 화두를 참구하여 삼매에 이르는 몰입의 경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고통의 원인은 내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말과 행동이 가족을 화나게 했고 그들로 나로 인해 괴로웠으리라. 혹견과 오해가 불화의 시발점이었다. 마음의 빗장을 먼저 풀고 ‘나’를 바꾸고 싶어졌다. 과거의 모든 인연에게 엎드려 사죄하고 싶다.

수행은 맞닥뜨린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관조하는 것이다. 마음의 뿌리를 찾아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자신의 고통 속에서 왜곡된 앎을 직시하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를 바로보고 이해의 시각을 교정하는 것이다. 고통의 근원을 되짚어 가다보면 내가 무심코 지은 말과 행동이 지금에 작용하는 것을 간과했음을 알아차리게 한다. 옹졸하게 닫혔던 마음이 넉넉하게 풀리고 자신을 살펴 참회(懺悔)하는 것이다. 비틀린 의식(意識)을 도려내고 보수(補修)하고 아물리는 노력이다. 염불과 참선수행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예전에는 문제가 생기면 당황하기 일쑤였으나 지금은 붙들고 해결하려고 애쓴다. 괴로운 고민에 허덕이지 않게 되었다. 아직은 수행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지만 사물의 이치를 그대로 보려하고 마음에 일어나는 감정이나 생각을 알아차리고 그치려 노력한다. 경계에 따라 움직이는 인식을, 관조하고 거기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얽매임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하며 한 생각에 국집하게 하는 장애이다. 그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하는 혹견(惑見)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의혹을 끊고, 누구 때문에 화내고 슬퍼하고 기뻐 날뛰지 않으며 수면(水面)처럼 안온한 마음을 유지하고자 한다. 평상심(平常心)을 유지하는 것이다.

자신의 나쁜 습성을 알고는 있으나 선뜻 고치지 못한다면 수행을 해야 한다. 무엇인가 성취하고 싶은데 생각만 있을 뿐 그것을 위한 행(行)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수행을 해야 한다. 매사에 부정적이거나 의기소침해 있다면 역시 참선을 해보아야 한다. 자기 자신이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존재라는 자괴감(自愧感)에 빠져있다면 반드시 참선을 해야 한다. 세상을 긍정적인 안목으로 명쾌하게 살고자 한다면 훌륭하신 선지식을 찾아 주저 없이 참선의 문에 들어서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일정에서 어쩌면 절대평화와 같은 달콤한 휴식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치열한 고통을 수반했다. 불보살님의 가피와 지도스님의 조력과 불퇴전의 용기로 자신의 편견과 우치를 깨뜨려 세세생생의 업장을 벗고 대자유인이 되는 짧은 휴식, 금산사 보제루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금산사 템플스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