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태그의 글 목록
썸네일 팔공산 승시 축제, 팔공산에 가면 스님들이 물건을 판다 팔공산에 가면 스님들이 물건을 판다 팔공산 승시 축제, 9월1일~5일까지 동화사는 청빈한 삶을 살았던 스님들이 물물교환을 위해 마련한 승시를 현대적으로 재연한‘팔공산 승시 축제’를 9월 1~5일 동화사 일대에서 펼친다. 특히 올해는 대구 세계 육상선수권대회와 맞물려 더욱 내실 있게 진행될 예정이다. 승시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번성했던 스님들의 산중장터로 스님들이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고 사원에서 생산한 물자를 유통시키는 장터를 의미한다. 올해 승시는 9월 1일 오후 6시 동화사 봉서루 앞 특설무대에서 개회식과 함께 시작된다. 전통문화와 먹거리ㆍ볼거리를 체험할 수 있는 승시마당과 문화마당, 공연마당이 마련돼 관람객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승시마당에서는 불교미술 체험, 사찰 물품 제작시연, 차명상, ..
썸네일 56년 만에 공개된 법정 스님의 편지글 ‘마음하는 아우야’ 56년 만에 공개된 법정 스님의 편지글 ‘마음하는 아우야’ 오늘의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이 시대 ‘무소유’사상을 남기고간 법정 스님. 스님이 이승에서의 짐을 벗고 자유롭게 떠나신 지도 벌써 1년여가 지났다. 스님은 무소유 사상과 더불어 많은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해왔다. 책은 이제껏 한 번도 발표되지 않았던 스님의 또 다른 글들이다. 출가를 결심한 1955년부터 불일암으로 들어가기 전인 1970년대 초반까지 십여 년 동안 사촌동생에 보내온 일상의 편지들을 원본 그대로 엮은 것이다. 편지 속에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는 글과 고뇌하던 청년 법정의 모습이 그려진다. 편지글을 통해 우리는 법정 스님이 가족을 그리워하고, 동생을 챙기는 다정다감했던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스님은 비록 출가를 ..
썸네일 비움과 나눔으로 하나되는 행복한 세상 비움과 나눔으로 하나되는 행복한 세상 전북 고창 선운사(주지 법만)는 5월 8일 대웅보전앞 특설무대에서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비움과 나눔-회향’을 개최했다. ‘비움으로 가득차고 나눔으로 더해지는 행복한 세상’이라는 부제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고창지역의 어르신 300여명을 초청해 흥겨운 축하 무대를 마련하고 고창군청과 강호 항공고, 성내하늘땅센터에 각가 1백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법만스님은 “그 동안 고창 읍내에서 해 왔던 부처님 오신날 봉축 법회를 좀 더 의미 있게 지역민들과 함께 할 수 없을 까 고민 하다가 이 자리를 마련했다” 며 “지역의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주고 그 학생들은 답례로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을 해 드리면서 지역은 물론 세대간 소통과 이해의 장 (場)을 마련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
썸네일 법정 스님 저서 공공시설에 기증된다 법정 스님 저서 공공시설에 기증된다 지난해 3월 입적한 법정 스님의 저서가 공공시설에 기증된다. 법정 스님의 유지를 받드는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이사장 덕현 스님)’는 스님의 저서 중 팔고 남은 것들을 공공도서관, 교도소, 군부대 등 책을 필요로 하는 공공시설에 기증할 예정이라 밝혔다. 맑고 향기롭게 측은 “20만 부 가량의 반품이 예상되는 샘터사가 먼저 기증을 제안했다”며 “설 연휴 이후 출판사 측에 공문을 통해 협조를 구할 예정이며 3월 말까지 기증과 인세 환불문제 등의 모든 절차를 마무리 할 것”이라 말했다. 법정 스님이 펴낸 50여 권의 책은 “그 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는 스님의 유언에 따라 지난해 12월 31일 이후 판매가 중단됐다. 출판사들은 현재 서점에 반품을..
썸네일 선운사 승려노후수행마을 27일 기공식 지난 2007년부터 3년간 꾸준한 준비작업을 진행해 오던 전북 고창 선운사(주지 법만)의 승려노후수행마을 ‘석상마을’이 드디어 6월 27일 첫삽 을 뜨게 된다. 이번에 첫삽을 뜨게되는 승려노후수행마을은 일평생 수행과 중생제도에만 전념하다 무소유의 청빈한 삶을 살아가다 나이들어 어느 곳에도 의탁할 곳이 없는 노스님들의 복지를 위해 마련하는 시설이다. 재물을 멀리할 것을 근본으로 삼는 스님들에게 노후문제는 조계종단내 중대한 문제로 부각돼 있다. 조계종단 차원에서도 승려노후복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선운사의 석상마을 조성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공사는 약 20.000㎡(6000평)의 부지에 도로(황토길), 상하수도, 전기 통신 지중화사업 등 기반시설을 위한 사업이며, 스님들을 ..
썸네일 무소유의 삶을 살다간 법정스님 입적 서울 길상사 전 회주 법정(法頂)스님이 오늘(3월11일) 오후1시50분경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79세, 법납 56세. 법정스님의 법구는 현재 길상사에 안치됐다.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스님은 전남대 상과대학을 다니다 1954년 통영 미래사에서 조계종 초대종정을 역임한 효봉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56년 7월 사미계를, 1959년 3월 비구계를 각각 수지했다. 1959년 4월 해인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한 스님은 쌍계사와 해인사, 송광사 선원 등 전국 선원에서 수선안거했다. 법정스님은 1960, 70년대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주필, 한글대장경 역경위원,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역임하며 종단과 불교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1970년대 말 모든 소임을 내던지고 송광사 불일암..
고창 선운사 '반농반선' 승려노후수행관 건립 개별거주형 석상마을 조성키로 고창 선운사(주지 법만)에 원로스님들을 노후 수행관이 건립된다. 선운사는 6월 11일 경내 회의실에서 24교구 운영위원회를 개최하고 ‘석상마을 승려 노후 수행관 건립계획(안)’을 통과시켰다. 이 계획안에 따르면 행정기관의 협조를 얻어 금년부터 운사 인근 고창군 삼인리 477~522번지내의 자연부락인 석상마을의 부지 1만8천평(594,000㎡)의 부지에 외부인소유의 대지와 건물 약 8백평(2,677㎡)을 매입 철거한 후 한옥, 초가, 황토방등의 자연친화적인 건물을 신축할 예정이다. 10동 안팎의 규모로 건립하게될 수행관은 1가구 1인 거주형, 2-3인형 등의 구조로 토굴개념으로 건립하게되고 승납 25년이상, 세납 65세 이상 20명 정도의 원로스님이 공개적인 입주방식으로 반농반..
불교와 ‘사회적 기업’ ‘상생위한 공동체’ 불교정신과 일치 … 환경 문화 등 가능성 많아 한국은 지금 IMF 구제금융 당시보다 심각한 경제 침체를 겪고 있다. 자본주의는 투기, 소득분배 불평등 등 자본의 편중된 축적으로 인한 악순환 고리가 끊이질 않는다. 여기에 세계화로 인한 다국적 기업의 출현과 경제 블록화로 경제위기는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공존이 아닌 공멸의 위기를 겪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한 이 때, 불교계가 ‘사회적 기업’ 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경제난 해결에 팔 걷어붙인 중앙신도회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원(이사장 허경만)은 4월 15~16일 ‘위기의 시대, 불교에서 싹트는 사회적 기업’을 주제로 사회적기업을 통해 세계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자는 강연을..
돈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 박경준 교수, ‘불교평론’에서 돈에 대한 불교적 가르침 설명 돈이 문제다. 서민들은 물론 나라도 돈가뭄을 겪기는 마찬가지. 시중에 달러가 없으니 환율이 치솟았고, 금을 찾는 사람이 많으니 금값이 천정부지다. 작금의 경제위기는 금융공황이다. 불교는 무소유를 말한다. 돈이 생명줄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도 버리고 잊자니 당장 불편이 이만저만하지 않을 것 같다. 모두가 공업 중생이다 보니 나 하나만 잘한다고 위기가 사라질 것도 아니다. 부처님은 돈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셨을까? 박경준 교수(동국대)는 계간 제38호에 기고한 ‘돈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과 역사적 전개’에서 지혜를 강조했다. 박 교수는 를 인용해 “지혜로운 사람은 설령 재산을 잃는다 해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지만, 지혜가 없는 부자는 지금 한순간도 ..
무소유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성스님 신록이 우거진 익산외곽 미륵사지 북동쪽에 위치한 천호산 백운사. 보현보살(백운암), 문수보살(문수암), 관음보살(백련암)이 상주한다는 천혜의 길지이다. 서로 이웃해 있는 이들 암자는 예로부터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었다. 그중 무소유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우성스님이 주석하고 계신 곳이 백운사이다. 우성스님은 늦게 출가했다. 세수 50이 넘은 나이에 발심 출가한지 20년 남짓되었다. 1991년 우성스님이 처음 찾은 백운암은 거의 폐찰에 가까웠다. 허름한 법당과 요사채는 쓰러지기 직전이었고 신도는 물론 백운암을 찾는 발길도 끊어진지 오래되었다. 우성스님은 늦게 출가한 만큼 게으름을 피울 겨를도 없이 천일기도를 입재하고 일심으로 기도에만 매달렸다. 자연히 찾는 신도들도 하나 둘 늘어갔다. 기도중에도 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