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성스님

Posted by 정암
2008.07.02 12:28 불교뉴스/인물 동정

 신록이 우거진 익산외곽 미륵사지 북동쪽에 위치한 천호산 백운사. 보현보살(백운암), 문수보살(문수암), 관음보살(백련암)이 상주한다는 천혜의 길지이다. 서로 이웃해 있는 이들 암자는 예로부터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었다. 그중 무소유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우성스님이 주석하고 계신 곳이 백운사이다.

우성스님익산 백운사 우성스님

우성스님은 늦게 출가했다.

세수 50이 넘은 나이에 발심 출가한지 20년 남짓되었다.

1991년 우성스님이 처음 찾은 백운암은 거의 폐찰에 가까웠다. 허름한 법당과 요사채는 쓰러지기 직전이었고 신도는 물론 백운암을 찾는 발길도 끊어진지 오래되었다. 우성스님은 늦게 출가한 만큼 게으름을 피울 겨를도 없이 천일기도를 입재하고 일심으로 기도에만 매달렸다. 자연히 찾는 신도들도 하나 둘 늘어갔다. 기도중에도 폐허나 다름없던 전각을 일으켜 세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첫 번째 천일기도를 회향 후 신도들의 청에 의해 두 번째 천일기도 중 불의의 화재가 발생하여 그나마 있던 전각들도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스님은 낙심하지 않고 백운암의 복원을 위해 다시 두 번의 천일기도를 회향했다. 세 번째 천일기도를 회향할 즈음 큰 법당, 약사전, 관음전, 삼성각, 미륵불, 범종각, 요사채 등 10여동의 전각이 들어서고 도량이 일신됐다. 암자였던 가람이 규모가 커짐에 따라 백운사(寺)로 승격됐다.

스님은 사심이 없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스님이 계시다는 소문이 나자 많은 신도들이 찾아와 스님과 함께 기도에 동참했다. 가까운 익산 지역은 물론 서울, 부산, 심지어 미국에서 일시 귀국해 기도하고 가는 신도도 생겨났다. 자연 사찰의 재정형편도 차츰 나아졌다. 스님은 돈이 모아지는대로 주변의 토지를 매입하고 전각을 건립했다. 이는 모두 조계종단에 귀속시켰다. 노후를 준비하셔야 하지 않느냐는 우문에 스님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젖는다. 부처님께 귀의한 사람이 무슨 노후준비냐는 현답이 돌아온다.

스님은 포교에도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

가까운 익산에는 제법 큰 규모의 군부대 법당이 자리하고 있다. 가까운 제7공수 특전여단의 호국 천마사를 비롯해 여산 부사관학교의 군법당이 그것.

스님은 그중 여산 부사관학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법회를 지원해 왔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일이나 포교에 관련된 일뿐 아니라 지역의 불교행사에도 앞장서 지원해 왔다. 한동안 침체되어 있던 익산불교가 다시 중흥의 계기를 마련한데는 우성스님의 공이 크다. 이러한 공로로 교구본사인 금산사로부터 우수사찰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익산 백운사 사리탑

백운사의 또 하나의 자랑은 ‘부처님 진신사리탑’ 이다.

70여 평의 사리단에 중앙에 13m 높이의 8각 9층 부처님 진신사리탑이 좌우에는 각 9.5m 높이의 4각 5층탑에 아난존자와 사리불존자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이 사리들은 본래 미얀마 출신 안과의사가 미국에 봉안하려던 것을 상황이 여의치 않자 미국에 거주하는 백운사 신도를 통해 백운사에 봉안하게 된 것이다.

우성스님은 참 욕심도 많다.

이제는 그만 하실 만도 한데 또 다시 불사를 계획 하고 계신다.

부처님 사리탑 앞에 전각을 세워 불자들이 편안하게 기도하고 참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미래 불교의 주역이 될 청소년불자들을 육성하기 위해 청소년 수련원을 건립할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이 불사가 마무리 되면 백운사는 기도와 수행이 살아 숨쉬는 도량으로 거듭나게 된다.

“어느 곳이나 부처님이 안 계시는 곳이 없습니다만 일부 근기가 부족한 불자님들은 부처님을 가까이서 느끼고 싶어합니다. 부처님이 곁에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니까요. 힘든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백운사에는 언제나 불 보살님을 뵐 수 있으니까요.”
 <현대불교신문 전북지사장 조동제 bud108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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