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대책회의 박원석 상황실장의 '불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광우병 대책회의 박원석 상황실장의 '불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2008년 08월 03일 by jeungam

    광우병 대책회의 박원석 상황실장의 '불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목차

“첨엔 독경소리에 잠 설쳤지만 이제는 절 생활에 익숙해졌죠”

정부가 재협상 선언땐 당당하게 조사받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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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인터넷 언론인 미디어 붓다(http://www.mediabuddha.net)는 3일 조계사에서 농성중인 광우병 대책회의 박원석 상황실장의 편지를 공개했다.

 

‘조계사 농성은 또 다른 투쟁입니다’라는 제목의 편지는 자신들을 받아준 스님과 불교단체, 신도들에 대한 고마움과 총무원장 스님의 검문검색 등 무도한 사건의 원인이 된 것 같아 참담한 심경고백과 조계사에서 지낸 일상들, 국민과 함께 촛불을 든 감동을 결코 잊지 못할것이라고 담담하게 술회하고 있다.

박실장은 또 “만일 지금이라도 이명박 대통령과 이 정부가 잘못된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재협상을 선언한다면, 독선적이고 반민주적인 정책추진과 국정운영에 대해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변화를 약속 한다면, 수배자들은 주저 없이 조계사를 나가 조사에 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디어 붓다>

다음은 박원석 상화실장의 편지 전문

조계사 농성은 또 다른 투쟁입니다

오늘로 조계사에 들어온 지 29일째가 되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불경소리에 밤잠을 설쳤던 초기에 비하면, 힘겹기만 하던 108배가 어느덧 마음이 편해졌듯 사찰 생활이 몸에 익어갑니다.

먼저 오갈 곳 없는 수배자들을 따뜻하게 받아주신 총무원장님과 스님들, 불교계 단체들과 재가 신도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얼마 전 총무원장 스님이 타신 차량을 경찰이 검문 검색하는 있어서는 안 될 무도(無道)한 사건의 원인이 된 것만 같아 참담하고 송구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이곳에서 수배생활을 하는 동안 참회의 마음으로 더욱 정진할 것을 다짐합니다.

농성장을 지나시는 많은 스님들 그리고 신도들께서 따뜻한 격려와 지원의 말씀을 보내주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신도들께서는 왜 수배자들이 조계사를 찾아들었는지, 무엇을 목적으로 한 농성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언론들에서는 저희를 도피자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곳의 농성을 단순한 도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세달 간 광장과 거리에 켜진 수많은 촛불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하려는 잘못된 정책을 반대하는 외침이자, 천박한 물질만능주의를 넘어 생명과 환경, 인간의 존엄성, 품격 있는 삶에 대한 가치와 열망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건강과 생명, 안전을 호소하는 국민에게 불법’을 시비하고 ‘배후’를 거론하며, 위험한 정책을 밀어붙였습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한사코 외면하며, 독선에 가득 차 폭력마저 동원하는 이 정부를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저항밖에는 없었습니다. 저와 수배자들에게 죄가 있다면, 국민과 소통하며 함께 촛불을 들고 함께 저항한 죄일 것입니다. 때문에 조계사의 수배자들은 공권력이 덧씌운 ‘배후’니 ‘선동’이니 하는 가당치 않은 혐의를 인정할 수 없으며, 이 싸움을 결코 중단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저는 조계사의 농성이 단순한 도피가 아닌 촛불을 든 국민의 정당성을 밝히고 입증하는 또 다른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지금이라도 이명박 대통령과 이 정부가 잘못된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재협상을 선언한다면, 독선적이고 반민주적인 정책추진과 국정운영에 대해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변화를 약속 한다면, 수배자들은 주저 없이 조계사를 나가 조사에 응할 것입니다.

정부와 경찰은 수배자 검거라는 명목으로 조계사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또한 촛불을 끄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더 강경한 원천봉쇄와 진압으로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독재정권의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싸웠던 국민들을 물리력으로 굴복시키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며, 조계사를 아무리 겹겹이 둘러싼다 한들 국민과의 소통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구시대적 공안탄압은 이 정부의 취약한 통치력과 두려움의 반증입니다. 이제 불과 임기의 1/10밖에 채우지 않은 정부가 통치의 바닥까지 다 드러냈다면 더 이상 무엇이 남아있겠습니까? 국민과 정직하게 소통하고 국민을 설득시킬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이 정부는 결국 촛불을 든 국민과 거리에서 대치하다 임기를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국민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이 정부의 실패는 출발에서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7∙4∙7’공약은 선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과장이라고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파괴하는 한반도 대운하 추진과 ‘어륀지’로 대표되는 설익은 정책의 남발은 준비되지 않은 권력의 조급함과 취약함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고소영’, ‘강부자’ 인사파행은 이 정부가 추진할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드러내는 분명한 지표이며,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공영방송 장악 시도는 5공 시절의 ‘땡전뉴스’를 연상시키는 반민주성의 극단을 보이고 있습니다. 잇따른 외교의 실패와 구설수는 이 정부의 주권수호 의지와 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경제 살리겠다고 큰소리치며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 한 일이라고는 ‘전봇대 두 개 뽑고, 미친 소 수입한 것’이 전부라는 비아냥거림이 자연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런 점에서 광장에 촛불이 일찍 켜진 것은 너무도 다행한 일입니다. 이 정부의 모든 위선과 거짓 그리고 빈곤한 철학과 능력을 낱낱이 드러낸 촛불은 이미 승리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일상에 바빴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밤을 새워가며 목 놓아 외치게 만든 불가사의한 힘의 실체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제가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을 맡아 촛불집회의 한 가운데 있었지만, 광장과 거리의 촛불의 의미를 단편적으로 정의하고 결론내리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2008년 광장과 거리에 켜진 촛불은 지난 유럽의 ‘68혁명’이 그렇듯 끊임없이 재해석 되어야 할 복합적 사회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조계사에 갇힌 몸이며, 곧 저들의 감옥에 수감될지도 모를 처지입니다. 그러나 국민여러분과 함께 들었던 감동의 촛불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며 영광의 순간으로 제 가슴속에 남을 것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 내에 국민 여러분과 함께 승리와 축제의 광장에서 촛불을 들 것을 소망해 봅니다.

2008년 8월 3일

조계사에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 박 원 석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