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갈래

경전의 갈래

2011년 09월 23일 by jeungam

    경전의 갈래 목차

경전의 갈래

 부처님의 말씀은 정해져 있는 바가 없다. 중생의 근기에 따라 진리로 가는 길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그만큼 방편도 다양하다. 따라서 경전에도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갖추고 있는데 이에 따라 12부로 구분하였다. 
 

보살마하살은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12부경인 수다라, 기야, 수기경, 가타, 우타나, 인연경, 아파타나, 여시어경, 본생경, 광경, 미증유경, 논의경을 듣고 또 모든 성문들이 들었거나 듣지 않은 것을 듣고자 하며, 그를 모두 다 외고 받아 지니고자 하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대지도론 33권>, 이하 인용함)   ① 수다라(Sutra)
  계경(契經) 또는 법본(法本)이라 하며 경전 가운데 법의를 직설한 장행문(長行文)이다. 계경은 이치에 계합하고 근기에 계합한 경전을 말한다.
  모든 경 가운데 사실 그대로 직설하는 것을 수다라라 하나니, 이른바 4아함과 모든 마하연경과 2백5십계경이다. 삼장에서 나오는 그 외에도 역시 모든 경이 있나니 모두를 수다라(修多羅)라 한다. 

  ② 기야(Geya)
  응송(應頌) 또는 중송(重頌)이라 하며 앞의 장행문에 응하여 거듭 그 뜻을 운문으로 편 것, 곧 송을 말한다.
  모든 경전 안에서의 게송을 기야라 한다. 

  ③ 화가라(Vyakarana)
  수기라 하며 보살에게 주는 성불한다는 기록의 경문으로 경에 말한 것을 문답으로 해석하고 또 제자의 다음 세상에 태어날 곳을 예언한 것이다. 

  "이 사람은 그만큼의 아승지 겁을 지나면 부처님이 될 것이다"라고 수기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 법에서 중생에게 수기를 하시려면 먼저 모두 빙그레 웃으시면서 한량없는 광명을 네개의 어금니에서 내시나니에서 내시나니, 이른바 청색 황색 적색 백색 옥색 자색 등이다.

  ④ 가타(Gatha)
  풍송(諷誦) 고기송(孤起頌)이라 하며 장행문에 의하지 않고 곧 게송의 구를 짓는 것이다. 법구경이 이런 경우다.
  여섯 글귀, 세 글귀, 다섯 글귀 등 그 글귀의 많고 적음은 정해 있지 않는데도 역시 기야하 하며 또한 가타라고도 한다. 

  ⑤ 우다나(udana)
  자설이라고 하며, 묻는 사람이 없이 부처님이 스스로 설한 경으로 아미타경 등이다.
  우타나(優陀那)라 함은 법이 있다는 것인데, 부처님은 반드시 말씀을 하셔야 되는데도 질문한 이가 없으면, 부처님은 대략 질문의 실마리를 열어 주신다. 

  ⑥ 니다나(Nidana)
  연기 또는 인연으로, 경 가운데서 견불문법(見佛聞法)의 인연과 부처님의 설법교화의 인연을 설한 것이다. 제경의 서품으로 인연경과 같다. 

  니타나(尼陀那)하 함은 모든 부처님 법이 본래 일어난 인연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무슨 인연 때문에 이런 일을 말씀하셨다"거나, 수다라 중에서는 "어떤 사람이 물었기 때문이 그를 위하여 이 일을 말씀하셨다."거나, 비니(毘尼) 중에서는 "어떤 사람이 이런 일을 범하였기 때문에 이 계율을 정하셨다"고 하는 것 등이니, 온갖 부처님의 말씀이 일어난 인연의 일을 모두 니타나하고 한다. 

  ⑦ 아바다나(Avadana)
  비유라고 하며 경 중에 비유하여 설한 것이다.
  아파타나(阿波陀那)라 함은 세간의 모양과 비슷한 일의 부드럽고 얕은 말이다. 마치 중아함 중의 장아파타나경과 장아함 중의 대아파타나와 비니 중의 이십억아파타나 등이다. 

  ⑧ 이제목다가(Itivrtaka)
  본사(本事)라 하며 부처님이 제자의 과거세의 인연을 설한 경문으로 법화경 가운데 약왕보살본사품 같은 것을 말한다.
  여시어경(如是語經)이라 함은 두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끝맺는 구절이어서 "내가 먼저 말하기로 한 것을 이제 다 말하여 마쳤다"고 말하는 것이요. 둘째 삼장과 마하연 이외에 다시 경이 있어 이를 일목다가(一目多迦)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목다가라고도 한다. 마치 부처님께서 "이 사자는 비바시불 때에는 바라문의 스승이었는데 부처님을 설법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로 왔는데 그때 대중들은 법을 듣느라 함께 말하는 이가 없자 욕설을 퍼부었다. 이 구업 때문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91겁동안을 축생안에 떨러져 있었다. 이제는 나의 처소에 와서 마음이 청정한 까닭에 해탈하게 될 것이다"고 하셨다. 이와 같은 등의 것을 인연이라 한다. 

  ⑨ 자타카(Jataka)
  본생이라고 하며 부처님이 자신의 과거세의 인연을 설한 경문이다.
  본생경이라 함은, 옛날 보살이 일찍이 사자였을 때 숲 속에 있으면서 한 마리의 원숭이와 함께 친하게 지냈다. 원숭이는 두 마리의 새끼를  그 사자에게 맡기고 있었는데 마침 독수리가 배가 고파서 먹이를 찾고 다니다가 사자가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원수이 새끼를 채 가지고 나무위에 가 앉아 있었다. 사자가 잠에서 깨어 독수리가 새끼를 채어간 것을 보고 돌려달라고 했으나 돌려주지 않자, 자기의 날까로운 발톱으로 자신의 겨드랑이 살을 뜯어 내어 그 원숭이의 새끼들과 바꾸었다......이와같이 한량없는 본생에는 구제한 일들이 많이 있나니 이것을 본생경이라 한다. 

  ⑩ 비불략(Vaipulya)
  방광(方廣)이라 하며 광정(光正) 광대한 진리를 설한 경문이다.
  광경(廣經)이라 함은 마하연을 이름하니 이른바 반야바라밀경과 육바라밀경과 운경과 법운경과 대운경 등 이러한 한량없는 아승지의 모든 경전이니, 아뇩다랴삼먁삼보리를 얻기 위하여 말씀하신 경이다. 

  ⑪ 아부타달마(Adbhutadharma)
  희유법, 미증유법이라 하며 부처님의 여러 가지 신력을 나타낸 부사의사를 기록한 경문을 말한다.
  마치 부처님께서 갖가지의 신력을 나타내면 중생들이 보고 전에 없던 일(未曾有)이고 괴상하게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른바 부처님께서 탄생할 때 몸으로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의 세계와 어두운 곳을 비추신 것이다....땅은 크게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렸으며 나무는 음성을 내고 하늘의 음악이 울렸으니, 이러한 등등의 한량없는 희유한 일들을 말씀하신 것을 바로 미증유경이라 한다. 

  ⑫ 우바제사(Upadesa)
  논의라 하며 법리의 논의와 문답의 경문을 말한다.
  논의경이라 함은 모든 질문한 이에게 대답하면서 그 까닭을 해석하는 것이다. 또 다시 모든 이치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니, 마치 부처님께서 사성제를 말씀하실 때와 같다......이와같은 문답에서 그 뜻을 널리 해석하는 것을 바로 우바제사라 한다. 

  <대지도론>에서는 이와 같이 경문을 구분하면서 이러한 모든 경전들을 수지독송하기 위해서는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하였다. 그 말은 12부경의 핵심이 바로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이다. 반야란 지혜를 말하고 바라밀이란 도피안(度彼岸)을 말한다. 즉, 반야바라밀이란 지혜로써 이 언덕을 건너 저언덕에 이른다는 것이다. 고통의 원인을 직시하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바른 행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반야바라밀이다. 반야바라밀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이다. 즉, 모든 것은 실체가 없으므로, 일체의 존재나 현상들 속에서 고정되고 편협된 틀에서 벗어나 자유자재한 본질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지혜이다. <반야심경>에서 관자재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시다 오온이 공함을 보시고 일체의 고액을 벗어났다고 하였으니, 모든 존재의 본질은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아니며,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그리하여 현실과 본질이 둘이 아닌 세계의 실상을 깨달은 것이다. 또한 <금강경>에서는 "무릇 형상 있는 것들을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볼 수 있으면 곧 부처를 본다"하였다.


  따라서 진리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현실 가운데 있으나 현실 속에 묻혀 버린 사람(상에 갇혀 버린 사람)은 진실을 볼 수 없다. 일체의 상을 벗어버려야 진실을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조차도 방편임을 분명히 알아 집착함이 없어야 한다. 부처님은 부처님의 말씀을 뗏목에 비유하셨다. 뗏목은 강물을 건너는 데는 요긴한 것이다. 그러나 저 언덕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버려야 한다. 범부 중생은 불법승 삼보에 의지하여 수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방편인줄 모르고 그것을 절대화시키고 또 하나의 상을 만들어 움켜지고 있는 한 참다운 진리는 요원한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불법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손가락 끝을 따라 달을 봐야지 손가락만 보고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간경 수행자는 경을 읽을 때 이 점을 명심하여 그 요체를 파악하는 데 힘 쓸 것이지 문자에 떨어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일체 경을 수지독송 할 때에 반야바라밀을 먼저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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